아주 어렸을 때였습니다. 저희 집은 아버지께서 전파상을 하셨기에 늘 TV가 켜져 있었지요….

그래서 권투의 장정구 선수, 박종철 선수, 유명우 선수, 그리고 축구대표팀의 경기들을 볼 수 있었고 또 가끔 뉴스를 통해서 차범근 선수의 하이라이트를 볼 수 있었습니다. 흑백TV 속에서 나오는 한국인 축구선수가 골을 넣는 장면을 보면서 모여든 어른들은 함성을 지르며 “야! 대단하네…” “야! 빠르네…” 하면서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TV에서 특별한 프로가 나오면 이웃집 어른들은 우리 집에 모여서 관전을 했습니다. 사실 전 그때 TV 속에서 축구를 하는 한국선수가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빠른지, 왜 외국사람들과 같이 시합을 하는지…. 그저 차범근이라는 이름이 멋지게만 느껴졌을 뿐입니다. 가운데에 ‘범’자가 있고 차범근하면 벌써 날쌘 호랑이라는 느낌을 받았지요.

어렸을 때 전 용맹한 호랑이를 좋아했는데 어른들이 동생에게 범띠구나 할 때마다 소띠인 전 늘 질투가 났었지요. 지금은 우직한 소를 더 좋아합니다. 헤~.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유럽에 알린 사람….

외국사람들과 축구공을 차는 사람….

골을 넣고 두 팔을 들어올리는 사람….

가끔 우리 집에 모여든 어른들을 기쁘게 하며 그들의 두 팔을 같이 들어올리게 하는 사람….

요즘에 비해서 유니폼을 좀 작게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던 한국사람….

어릴 적 저의 기억들입니다.

지난 10년간 저의 외국 생활의 고통을 다 알 것 같은 사람.

차범근 감독님께서 제게 해내라는 용기의 글을 주셨습니다.

과거에 저는 차범근 선수의 활약을 보며 기뻐하는 사람들은 우리 집에 모인 어른들뿐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가 아홉 살이 좀 안 되었고 10세에 야구를 시작하여 12세에 전국대회 우승을 맛보았지요. 동네 어른들의 칭찬을 받으며 꿈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왕 하는 운동이니까 최고의 선수가 되라고 하셨죠.

최고의 선수 차범근…. 그제야 알았습니다.

차범근 선수는 우리 집에 모여든 어른들만 아는 사람이 아니고 온 국민이 다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냥 이름만 알려진 선수가 아니고 축구를 통해서 온 국민을 기쁘게 해준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활약하면서 온 국민으로부터 용기와 힘을 받고 또한 제가 활약하는 모습에 기뻐하는 국민들을 생각할 때마다 옛날 차범근 선수의 골 넣는 모습을 보고 환호하는 어른들을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분으로부터 용기와 마음을 받으니 저의 목표에 대한 다짐과 자신감이 강해짐을 느낌니다. 비록 저는 야구를 하는 선수지만 저의 야구인생으로 많은 분들에게 인생의 메시지를 주고 싶습니다. 먼 훗날 저도 차범근 감독님과 같은 후배들과 꿈나무들에게 용기와 힘의 글을 전하고 그들에게 진정한 힘이 된다면 얼마나 큰 보람을 느낄는지….

여러분, 스타는 그 사람 자신이 만드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존재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스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정해 주는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다는 것은 아마 최고의 인생을 산 사람일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특별한 재주보다는 받은 감동을 오래도록 간직합니다.

여러분들의 한결같은 마음이 늘 제게 감동을 줍니다. 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만큼의 감동들을 받았습니다.

저에게 있어 영원한 스타는 차범근 감독님과 여러분 당신들입니다..

늘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나아가는 녀석 찬호로부터….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