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평재(46)의 소설은 불편하다. 아무리 유연한 상상력을 가진 독자들도 이평재의 소설을 읽으면서는 신음소리를 흘린다. 청양고추를 삼킨 것 같은 불편한 신음은, 우리가 매운 음식을 욕하면서 또 찾듯이, 독자를 한 곳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등단 7년 만에 내는 두 번째 소설집 ‘어느날, 크로마뇽인으로부터’를 단숨에 읽는다.

"일부러 그런 것은 없고 기질적인 문제죠."

광화문에 있는 한 찻집, 오후였다. 소설 출간 기념으로 전날 밤 후배들과 술을 많이 마셔서 갈증이 난다는 이평재는 아이스티를 끌어당겼다. "기질적이란 무슨 뜻이죠?" "제가 초현실적인 것에 관심이 많거든요. 쉬르 쪽에 기울어 있다고요."

하긴 게재된 작품들의 주인공을 살펴보면 그럴 만도 하다. 페니스가 졸아드는 병에 걸린 형사, 고양이 세 마리를 차례로 죽여서 요리로 만드는 외음부 무모증을 가진 여인, 창녀의 딸로 태어나 간암 말기의 생모(生母)를 외면하는 과학잡지 사진기자, 정신병을 일으키는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교수를 살해하는 대학 강사, 한편에서는 정신과 의사로 다른 한편에서는 소설가로 이중인격의 분열증을 보이는 남자….

그 주인공들이 벌이는 행동 또한 기이하기 짝이 없다. 협상 전문가인 형사는 타워 크레인 꼭대기로 인질범 여인을 찾아 올라가 그곳에서 강간을 하기도 하고, 그 형사는 자기 집 욕조에 살고 있는 3만5000년 전 크로마뇽인에게 성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과학잡지 사진기자와 동거하고 있는 남자는 영장류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신경정신과 의사인데, 유전자 조작을 받아서인지 섹스를 할 때마다 눈빛이 초록색으로 변한다.

"그것을 전략적으로 구사합니다. 방법론적으로 쓰는 것이지요."

"방법론적이라니요?"

"내가 뭘 쓰겠다고 했을 때는, 소설 자체를 연출하는 것입니다. 손아귀에 보석이 있다면 어느 손가락부터 펼쳐야 하는지 선택하는 것입니다. 서두(序頭)가 흡인력을 지니도록 하고요. 누구나 그렇게 하겠지만요."

소설을 연출한다는 것은 가능한 한 자신의 삶을 적게 베낀다는 뜻이다.

"제 인물들을 병적(病的)이라고 했을 때, 그 병세를 일으키는 원인을 공부하고 그 근거 위에 상상력을 붙입니다."

이평재씨는 "내가 뭘 쓰겠다고 했을 때 그것은 소설을 연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a href=mailto:choish@chosun.com><font color=#000000>/ 최순호기자</font><

이평재는 진즉부터 평단의 호평이 두드러졌다. 평론가 서영채는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너절한 일상을 가로지르는 강렬한 섬광"을 읽고 있고, 평론가 남진우는 "질척거리는 점액질의 세계 저편에 펼쳐진 한없이 막막한 공간"을 포착하고 있다. 평론가 방민호는 "그로테스크한 환상성이 오늘날 우리 문학을 구성하는 중요한 경향임을 보여준다"면서 "나는 이 작가의 독특하고 창발적인 상상력에 깊이 매료됐다"고 말했다.

이 소설집은 쉽게 비교할 수 없는, 그래서 뚜렷하게 구별되는, 유니크한 문장과 에피소드를 품고 있다. 미국 시카고와 텍사스에서 그림을 전공한 이평재는 "글쓰는 것이 어렵지 않고 즐거웠다"면서 "기존의 틀을 가지고 내 작품을 재단하거나 외면하는 이들에게는 '메롱~!' 하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이 작품집을 독자들께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