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청탁을 받고 우리 사회에서 신문의 역할을 생각해봤다. 짧은 생각이지만 신문에는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소식을 전달해주는 전달자로서의 역할과 세상 사람들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길 안내를 해주는 역할 두 가지가 있을 것 같다.
나는 세계에 대한 안내자로서 신문의 역할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문은 객관적 사실만을 전달하는 단순한 소식지가 아니다. 신문은 안내자로서, 독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들려주는 주관적인 목소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내가 대학 생활을 하던 시기에 형성된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 조선일보는 신문 자신의 주관적인 목소리가 우파(右派)쪽으로 치우쳐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대학가에서 경험했던 조선일보 불매운동 같은 극단적 행위는 분명 지나친 감이 있었다. 지금 나는 조선일보를 펼쳐놓고 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신문을 매만지며, 달라진 조선일보를 체감한다.
우선 일반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는 오피니언(OPINION)란과 요일별로 모습을 달리하며 다양한 콘텐츠를 집중해서 조명해주는 섹션이 좋은 예다.
근래 들어 특집으로 다뤄주는 기사들도 눈에 띈다. 사회 속의 여권(女權)신장, 세계 속의 한국, IT혁명, 근로환경개선과 친환경의 경쟁력까지…. 이제는 특정 방향으로 기울지 않고(?) 세계의 안내자로서의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여서 좀 민망하지만, 얼마 전 조선일보에 게재됐던 '뚱뚱교주 출산드라 김현숙'에 대한 기사는 많은 논란거리를 안고 있었기에 쉽게 기사화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를 기사화했다.
나는 이 프로그램과 관련해 많은 공격을 받은 바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껍데기에만 치중하여 입장을 가르고 공격하려는 습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변화의 시대에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선 다원주의적인 시각과 상대주의적인 시각을 버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세계적 음악가인 고(故) 윤이상 선생의 '새는 양쪽 날개로 날아간다'는 말씀처럼 조선일보가 오른쪽과 왼쪽의 목소리가 조화롭게 섞인 지혜를 보여주며, 시대의 창공을 누비는 진리라는 이름의 멋들어진 새가 되어주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