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권 교수는“장애 문제는 엄연한 인문학적 관심의 대상”이라고 했다. 이기원기자 kiwiyi.chosun.com

소장 국문학자 정창권(38·고려대 초빙교수)씨의 연구 테마는 국문학이 아니라 역사학, 혹은 사회학이라 해도 좋겠다.

'조선조 시각장애인의 삶과 사회적 인식' '조선에서의 장애인 인식' 같은 논문을 잇달아 쓰더니, 이번엔 역사 속 장애인 이야기를 다룬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문학동네)를 냈다. 정 교수가 소개하는 조선 시대 장애인들의 생활과 정부의 장애인 대책은 우리 역사에 대해, 그리고 우리 사회의 전통에 대해 우리가 정말 얼마나 잘 모르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만든다.

그는 "조선 시대는 장애인이라도 사회적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 고위직에 오르거나 이름있는 학자, 예술가가 된 사례가 수두룩하다"고 소개한다. 세종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허조와 17세기의 대학자 조성기는 등이 굽은 척추 장애인이었다. 중종 때 우의정을 지낸 권균은 간질 때문에 여러 차례 사직을 청했으나, 임금은 휴가를 주면서 만류했다. 노사 기정진은 어릴 적 천연두를 앓아 왼쪽 눈을 실명했으나 평생 학문에 몰두해 19세기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이름을 남겼다. 화가 최북, 가야금 명인 김복산, 노래와 춤, 관악기와 현악기에 모두 능했던 백옥과 아쟁의 명인 김운란은 모두 시각장애인이었다. 이외에도 장애인 예술가들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런 기록을 찾아내기 위해 정 교수는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정사와 '대동야승' 등 야사, 판소리, 가면극, 야담집, 소설, 시조 등을 두루 훑었다. "조선시대에는 장애인들을 얼마나 잘 보살피느냐가 훌륭한 정치의 기준이 됐습니다. 장애인들에게 양식을 제공하고, 정기적으로 어사를 파견해서 확인하는 등 사회 보장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어요."

정 교수는 장애인에 대해선 일단 가족이 책임지도록 했고, 친척과 이웃 등 마을 공동체에서 지원했다고 소개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장애인에게 조세와 부역, 잡역을 면제하고, 생활필수품을 제공하거나 잔치를 베풀었다. 태종 때에는 조정에서 시각장애인 단체인 명통시(明通寺)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 단체는 국가로부터 가뭄이 들 때 기우제를 지내는 일을 위임받았고, 조정에서는 그 대가로 쌀이나 베 같은 물건을 포상으로 내렸다.

정 교수는 "조선 후기에 와서 성리학이 통치 이념으로 자리잡으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강화됐고 이들의 사회적 지위도 크게 낮아졌다"고 지적한다. 일상어나 구비문학에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 대거 편입된 것도 바로 이 시기라는 것. 산대놀이와 봉산탈춤 등 민중 의식을 반영하는 민속극도 장애인 시각에서 보면 문제가 많다고 했다. 양반을 풍자하기 위해 장애를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이번에 수집한 장애인 관련 기록을 만화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활용할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