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아내와 살림하는 남편을 소재로 한 드라마 ‘불량주부’가 월화 드라마를 평정했다. 드라마 홈페이지에는 “내 얘기 같다”며 공감을 표하는 남편들의 글로 빼곡하다. “IMF 때 직장 잃고 한동안 살림하던 생각난다”(이영민)는 추억담부터 “육아에 투신한 지 2년…남자 주부도 당당해질 수 있는 그날을 꿈꾼다”(김기홍)는 응원의 글, “김치 부침개 맛있게 만드는 법”(홍승주) “흰 옷 변색 막으려면”(김진덕) 등의 비법 전수까지…. 아니 잠깐, 우리나라에 살림하는 남자들이 언제 이렇게 많아졌지?
◆남자라고 살림 못 한다는 법 있나
드라마의 원작인 만화 '불량주부 일기'의 작가 강희우(36)씨는 "여자는 깔끔하고 남자는 지저분하다는 것도 편견"이라고 말한다. 강씨는 김치 담그는 것 빼고 웬만한 음식은 다 할 줄 안다. "자취 5년 하다 보니까 웬만한 건 다 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안 하면 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살림하는 남편 일기'라는 책을 낸 시나리오 작가 김전한(43)씨는 주방일 잘 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라 어려서부터 살림에 '내공'을 쌓은 경우. 신혼 초 아내의 서툰 살림 솜씨를 보다 못해 "내가 하겠다"고 가로챈 끝에 결혼 8년 만에 완연한 '모범주부'의 경지에 올랐다. 지금도 직장생활하는 아내 대신 살림 전반을 관리한다. 출퇴근하는 직업이 아니다 보니 유치원에서 둘째 데려오는 일이나 저녁 찬거리 사와서 상 차리는 일도 보통 그의 몫이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렇지, 남자들도 아쉬우면 다 하게 돼 있습니다. 가사나 육아가 누구 한 사람만의 일은 아니니까요."
◆'분리수거의 왕자' 강희우씨가 말하는 "이것만은!"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는 강씨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재활용품 분리수거. 흔히 광고지를 신문지와 같이 버리는데, 강씨는 빤질빤질한 코팅 비닐을 말끔히 벗겨내고 버린다. 한쪽 끝부분을 잘 잡고 당기면 다 벗겨진단다. 우유팩을 차곡차곡 접어서 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음료수 페트병은 뚜껑을 딴 뒤 남아 있는 부분까지 깔끔히 제거해야 한다. 종이 위에 플라스틱이 덮여 있는 주스통은 가위로 플라스틱 부분만 잘라내고 버린다.
빨래의 기본은 주머니를 깨끗이 비우는 것. 강씨는 아예 속옷·와이셔츠 등을 종류별로 빨래망에 따로 담아서 세탁한다. 그렇게 하면 옷들이 세탁조에서 뒤엉키지 않고, 만에 하나 바지 주머니에 휴지가 들어 있어도 피해가 크지 않다. 스프링이 오래 가도록 침대 매트리스도 정기적으로 뒤집어 주고 가끔 가구 배치까지 바꿔준다면 진정한 고수라고 할 수 있다.
◆'냉장고 전문가' 김전한씨가 말하는 "이것만은!"
김씨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냉장고 정리. 냉장고를 자주 들여다보는 주부가 낭비가 적단다. 일단 냉장고 안 음식들이 한눈에 보여야 한다. 시장에서 받은 까만 비닐봉지는 반드시 벗겨서 넣어야, 잊어버리지 않는다. 고기를 보관할 때는 한꺼번에 꽝꽝 얼리지 말고, 한 끼 먹을 만큼씩만 비닐 봉지에 나누어 보관한다.
냉동실을 너무 믿는 것도 경계할 일. 많은 주부들이 추석 때 먹던 떡을 다음해 설까지 냉동실에 처박아 놓는다. 장 보러 가기 전에 냉동실을 열어보면 며칠 먹을거리가 나온다. 유통기간 지난 것은 아깝더라도 과감히 버린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그래야 다음부터 식품을 조금씩 사는 버릇이 든다.
가족이 적은 집은 묶어 팔고 끼워 파는 대형 마트보다, 조금씩 필요한 만큼 살 수 있는 동네 시장을 애용한다. '대량구매시 할인, 사은품 증정'에 한꺼번에 왕창 샀다가는 나중에 썩어서 버리기 일쑤. 고수들은 '오늘 저녁, 내일 아침' 먹을 것만 달랑 산다.
●남편에게
살림고수 되려면
―혼자 있어도 하루 세 끼는 꼭 챙겨 먹는다.
―물 마신 컵과 기름 묻은 접시는 따로 씻는다.
―밥통에 남은 밥, 주걱으로 가끔 뒤집어 줘야 말라붙지 않는다.
―가습기 자주 청소할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방에 빨래를 널자.
―장 볼 때는 눈치보지 말고 당당하게 묻고, 비교하자. 쭈빗거리다가 바가지 쓴다.
―싸다고 대량구매했다가 썩히지 말고, 오늘 저녁, 내일 아침 먹을 것만 산다.
―초보자가 너무 잘 하려고 하면 지친다. 완벽하게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아내에게
남편을 주말주부 만들려면
―알아서 해줄 것을 기대하지 말고 협력을 요구하자.("먹는 건 최고로 해줄 테니, 쓰레기 분리는 당신이 맡아줘.")
―남편의 몫을 정확하게 정해 주고 책임감을 심어 준다.("철수야, 오늘 저녁부터 아빠랑 학습지 같이 하는 거다.")
―일 시킬 땐 광범위하게 말하지 말고 당장 할 일을 하나하나씩.("여보, 세탁기에서 빨래 꺼내서 널어줘요. 널 때는 탁탁 두 번씩 털어서.")
―가끔은 주말에 하루 종일 아이를 맡겨 본다.("영희야, 오늘은 엄마 소풍가는 날이야. 아빠한테 엄마해 달라고 하렴.")
―열심히 했으면 좀 어설픈 데가 있어도 일단 칭찬해 준다.("당신이 도와주니까, 내가 해방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