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링컨 대통령을 상징적 인물로 내세운 추(醜)한 미국인협회, 나폴레옹을 내세운 작은키 연합, 포드 대통령을 앞세운 왼손잡이 협동조합, 마릴린 먼로를 앞세운 아름다운 비만동아리 등등 인체의 외모를 둔 편견과 차별에 대한 투쟁을 21세기의 인권과제로 삼고 있다.
간호대학생으로 살이 쪘다 하여 퇴학시킨 데 대한 비만 재판도 얼마 전에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즈음 비만 남녀를 두고 웃기는 개그가 뜨고 있다던데 편견의 인권처리 단계 이전인 낙천(樂天)처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과체중인 비만과 풍만(豊滿)은 같지 않다. 풍만이 선호된 시대와 날씬이 선망되는 시대는 끝바꿈해왔다. 로마의 황제들을 줄줄이 사랑의 포로로 사로잡았던 천하일색 클레오파트라는 풍만한 미녀였다.
그녀의 전기에 보면 ‘이 세상 어떤 힘센 장사도 내 몸을 안아 들고 걷지 못하듯이 아무리 힘센 로마도 이집트는 들고 갈 수 없을 것이다’라는 독백이 있으니 풍만한 체구였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서양의 클레오파트라라면 동양에서는 양귀비다. 사랑의 라이벌인 매비(梅妃)는 양귀비를 두고 말버릇처럼 ‘살찐 종년(肥婢)!’으로 매도했다고 ‘매비전’에 나온다. 양귀비가 판치던 당나라 궁중에선 양귀비에 동조해서 허리띠를 두르지 않는 패션이 유행했다던데 이 역시 양귀비가 ‘당서(唐書)’의 기록처럼 풍염(風艶) 곧 풍만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나라 때 그림들이나 고분벽화의 여인들이 한결같이 풍만했음은, 영토의 확장으로 북방 유목민족의 육식문화가 수신미(瘦身美)를 추구하는 곡물문화를 쫓고 자리매김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설이 있다. 아름다울 美자가 ‘羊+大’이듯이 유목문화에서는 살이 쪄야 아름답다.
우리 전통사회에서도 날씬하면 아기 들어설 공간이 없다 하여 무자상(無子相)으로 소외받았었다. 유럽에서는 날씬했다가 통통해지곤 했던 마리아상으로 가늠하는데 5세기에는 풍만미를, 비잔틴 시대에는 날씬미를, 다시 르네상스 시기에 풍만미로 끝바꿈하다가 20세기 중반은 마릴린 먼로나 제인 맨스필드 등으로 미뤄 풍만미 추구시대였음을 알수 있다. 한데 현대는 개그 소재가 되리만큼 풍만 최악의 시대를 맞고 있는 셈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