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산불 전투 장병들<

날뛰던 화마(火魔)는 6일 드디어 숨이 끊겼다. 그러나 4일 밤부터 이날 새벽까지 30여시간 동안 강원도 양양군이 입은 화상은 컸다. 대형헬기로 진화작업에 나섰던 박곤(50) 산림항공관리소 강릉지소 운항실장은 “공중에서 내려다보니 산자락 여기저기에 폐허만 남았다”고 했다. 소방방재청은 양양군에서만 250ha의 산림과 주택 160채, 상가 27채 등 건물 246개 동이 소실됐고, 이재민은 376명이라고 밝혔다.

◆폭격 당한듯… 사라진 낙산사

포탄이 떨어진 전쟁터 같았다. 입구에 있는 홍예문의 누각은 흔적도 없었다. 법당인 원통보전과 주변 건물터에는 깨진 기왓장과 숯이 된 서까래만 쌓여 있었다. 녹아내린 동종은 온통 잔해가 덮어 버렸다. 검게 그을렸지만 꿋꿋하게 서 있는 석탑이 외로워 보였다. 산불은 의상대 바로 아래 바닷가 언덕까지 태웠다.

낙산사 신도 김진(78·양양읍 구교리)씨는 “어제 아침 7시에도 기도하러 왔는데 웬 날벼락이냐. 50년 넘게 다녔는데…”라며 허탈해했다. 불과 보름 전에 부임했다는 주지 정념(正念) 스님도 “수행이 부족해 낙산사를 지키지 못했다”고 했다. 그나마 보물급 불상과 탱화를 급히 옮겨 보존한 것을 위안삼았다.

산불로 집을 잃은 윤연자(63)씨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윤씨는 지난 2002년 태풍‘루사’로 농경지 침수 피해를 입었다. 6일 양양군 강현면 용호리에서.

◆넋 잃은 주민들

가장 큰 피해지역인 강현면 용호리는 주택 60여채 가운데 35채가 불과 20분 만에 쑥대밭이 됐다. 집들은 폭삭 내려앉아 쓰레기 더미로 변했고, 매캐한 연기만이 공중에 흩어졌다. 마을에는 털이 불에 그슬린 개가 돌아다녔다. 멀리서 달려온 이성희(53)씨는 노부모가 살던 집터를 뒤지고 있었다. 광에서는 녹아 찌그러진 김칫독이 나왔다. 이씨는 “당장 먹을 것도 없는데”라며 익어버린 김치를 골라냈다. 소 3마리가 놀라 도망쳤는데, 임신한 암소 한 마리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감곡리 주민 김대호(70)씨는 “벼 40가마니가 불에 타버렸다”며 잿더미 속에서 성한 곡식을 가려내고 있었다. 5일 밤 내내 산불이 마지막 발악을 하던 물갑리에서 50년 가까이 살아온 집을 잃었다는 전순남(61)씨는 넋이 나갔다. 부엌에 숨겨뒀다는 패물을 찾아 잿더미를 뒤지고 또 뒤졌다. 전진2리 황규석(50·목사)씨는 집과 함께 평생 모은 책 2000여권을 모두 잃었다. 황씨는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책부터 남미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모은 것도 모두 타버렸다”고 했다.

◆복구와 구호

20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산불 진화와 이재민 구호를 위해 팔을 벗고 나섰다. 7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6일 낙산사에서 불탄 기왓장을 치우며 복구를 도왔다. 군인들 수천명도 언제나처럼 이재민의 ‘친구’가 됐다. SK그룹, CJ를 비롯한 기업들은 라면 생수 햇반 담요 등 긴급재난구호품을 지원했다. 교보생명과 LG텔레콤 등은 보험료 납입을 유예해주고 전화요금도 감면해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