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TV 새 드라마‘신입사원’에서 망가진 백수 강호역을 맡아 연기변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에릭. 그는“대본과 캐릭터가 제 몸에 꼭 들어맞는다”고 했다

"나가죽어". 면접 보는 회사 이름도 기억 못해 시험에 떨어진 그는 밥상머리에서 어머니로부터 온갖 욕을 먹고 '철퍼덕' 소리가 나게 구타당한다.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는 어머니를 피해 집을 나가려는 찰나, 입에서 튀어나온 말. "아버지 2만원 있으세요?, 2만원 없으시면 만원이라도…" 제멋대로 뻗쳐올라간 머리칼에 멍한 눈빛, 능청스러운 목소리까지, MBC TV '신입사원'에서 비루한 백수 '강호'의 일상을 실감나게 연기하는 그는 분명 전작 '불새'에서 카리스마 하나밖에 믿을 게 없었던 에릭(문정혁)이다.

"학창시절만 해도 운동 잘하고 친구 많은 소위 '짱'이었는데 취직이란 문 앞에서 가진 게 없다는 것을 깨닫죠. 그러나 상황이 비굴하다고 해서 그 비굴함을 인정하기는 죽기보다 싫고, 강호란 친구 그렇게 이해했어요."

지난 4일 오후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 빌딩에서 거침없는 변신으로 연기자 데뷔 이래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는 에릭을 만났다. 연일 계속된 밤샘 촬영 속에 잠시 차에서 눈을 붙이고 있던 그는, 느릿하지만 또렷하게 머리 속 생각을 풀어낼 줄 아는 사내였다. '불새' 서정민, '신입사원' 강호의 모습이 한데 포개졌다.

"'불새'가 시청률이 높았던 데다 주변에서 화제가 돼 만족스러웠죠. 하지만 연기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참 많이 들었어요. 다음 작품에서는 연기로 칭찬받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는 "대본과 캐릭터가 제 몸에 잘 들어맞는다"며 "매회 대본을 받을 때마다 끝까지 읽으면서 몇 번씩 배꼽을 잡고 웃는 데 그게 드라마의 힘인 것 같다"고 했다.

에릭에 따르면, 연기란 "작품 안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가장 일상적으로 보여주는 것". 뻔뻔한 '백수' 연기도 본인이 비슷한 감정의 파장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이만한 '완성도'를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다. 갑자기 98년 '신화' 1집을 냈을 때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룹 '신화' 초창기 팬들 반응 썰렁해 美로 돌아갈 생각도"

"동료들하고 열심히 준비해서 앨범을 내놨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에요. 소속사는 갑자기 활동을 중단시키고. 그때 '마냥 물놀이 가자'는 노래 '으?으?'로 활동을 재개하려 했는데, 전국에 물난리가 나서 그것도 중단됐었죠. 거 참. 다 집어치우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까 고민 많이 했었는데, 그때 심정이 딱 입사 전 강호예요."

그는 "'신화'가 뜨고 나서도 멤버들 의지와는 관계없이 '강제 백수'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시원하게 웃었다. "한참 뜨는 가수 활동시기를 피해서 앨범을 내느라 생기는 공백"을 의미한다.

돌이켜보면 에릭은 '신화' 멤버들 중 가장 늦게 개인활동을 시작했다. 지금 그의 '스타성'을 감안하면 뜻밖이지만 "타고난 게으름"이 문제였다. "욕심도, 자신도 없었던데다 워낙 태평한 성격이라 제가 튀어야한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했다.

에릭은 솔직하다. 지난해 말,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방송사 입김에 놀아나지 않을 거물이 되겠다"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런 탓인지 '안티 팬'도 많다.

"'신화'로만 활동할 때는 팬의 울타리가 저를 감싸주고 있었는데 요즘은 제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많아요. 이제 자꾸 입으로 설명하려 하지말고 행동으로 보여주자, 그래서 그들 모두를 포용하자는 생각을 갖고있습니다."

그의 가장 큰 정체성을 구성하는 '신화'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팬들 환상을 깨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 연예인이라는 것도 밥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곤란한 질문을 하나 던졌다. "개인활동을 하는 신화 멤버들 사이에 경쟁심 같은 건 없나?" 대답이 '걸작'이었다. " '신화' 초창기 서로 마음에 안드는 게 있으면 마음에 하루를 품지 못하고 서로 피 터지게 싸웠어요. 그런 탓인지 질투나 시기 같은 감정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순수한 라이벌 의식이야 왜 없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