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 소설가

시간을 돌려보자. 지금으로부터 한 15년 정도 뒤로. 그때 내가 가장 소중하게 간직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슨 일로 울고 웃고 했을까? 누구한테 화를 냈을까? 또 어떤 식으로 화해를 했을까?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학창 시절, 나는 빈 교실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일요일이면 좋아하는 책을 가방에 넣고 학교에 갔다. 창가를 향하도록 책상을 돌려놓고는 1주일 동안 밀린 숙제를 했다. 연습장에 단어들이 빽빽하게 메워지는 것을 보다 혹시 지금 내 영혼도 이처럼 볼품없는 것들로 검게 채워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들 때면, 고개를 들고 운동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학교 운동장 한쪽에 서 있는 나무들의 그림자가 서서히 길어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일요일 오후를 보냈다. 숙제도 다 마치지 못하고 가지고 간 책도 읽지 못했다. 그저 운동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을 뿐이다. "아, 심심하다." 많은 것들이 잊혀졌지만, 이상하게도 심심하다고 중얼거리던 내 목소리는 세월이 흘러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필립 한든이 지은 '소박한 여행'이란 책은 '심심한 책'이다. 이 책은 41명의 여행자들의 가방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유랑 선승인 마쓰오 바쇼의 여행 가방에는 이런 것들이 담겨 있었다.

"차마 두고 오지 못한 벗들의 이별 선물들과 한시도 그를 떠나지 않은 불안과 고뇌." 마르셀 뒤샹의 주말 여행은 이처럼 간단했다. "짐가방은 절대 사절, 두 겹으로 껴입은 셔츠, 자켓 주머니에 칫솔 하나." 여행자들의 가방을 훔쳐보고 있노라면, 채우는 것보다는 버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된다.

이 책을 읽는다면 부디 서두르지 말고 하루에 한 사람의 여행에만 동참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여행자와 나란히 걷고 있는 자신을 상상했으면 좋겠다.

내 가슴에 작은 여행 가방을 하나 만들어 두자. 거기에 우리는 무엇을 채울 것인가. 나는 가방 안에 쉼표 하나만을 넣어두고 싶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일요일 텅 빈 교실의 심심함이 그 시절 내게 쉼표였던 것이다.

(윤성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