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봄도 더디다.
작년에 윤달이 끼어 있어서 그러한가. 유난히 바람 모질고 흐리고 눈 또한 많았다. 주말과 일요일에도 아직 동면에서 깨어나지 못한 짐승처럼 방 안에서 웅크리고 있기 일쑤였다. 기관지 치료를 받기 위해 정기적으로 들르는 병원의 내과 의사가 이토록 추운 겨울은 처음이라고 했다.
해도 계절은 어김없이 오고 가는가. 얼마 전 '마라도 자장면'이 먹고 싶어 마라도에 가봤더니 바람은 여전히 거셌으나 목덜미의 빛은 그새 따스하였다. 북서풍의 방향이 남동 쪽으로 은근히 휘어져 있었다. 서귀포엔 쉴 틈 없이 동백이 피고 있었다. 어디 매화 좀 볼 데 없나 종일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외돌개 가는 길에 팝콘처럼 다닥다닥 몇 그루 피어 있었다.
이제 3월 하순으로 접어들며 무거운 솥뚜껑이 열린 듯 불현듯 천지가 환하다. 어찌하여 봄바다는 저리 옥빛으로 맑고 햇살은 그리도 눈부신가. 차라리 눈을 감고 다녀야 할까 보다. 봄만 되면 또 왜 이리 몸은 가려운가. 발바닥부터 허리와 등골을 따라 이마까지 꽃 피듯 종기가 돋는다. 숨이 차다. 아니 되겠다. 나가 봐야지.
남서쪽 산방산으로 내달았다. 내 기억으론 동쪽 성산포와 함께 유채꽃이 가장 먼저 피는 곳이다. 집이든 밭이든 어딜 가나 줄지어 쌓여 있는 검은 돌담들. 그 안에서 수북이 솟아오르는 유채꽃의 무리. 눈 쌓인 한라산 자락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온통 노란색과 검은색으로 뒤범벅된 바리케이드 천지다.
겨울에 비행기와 배를 타고 잠깐씩 오간 이들에게 이제 전한다. 곧 유채꽃 축제와 벚꽃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이다. 올해도 제주대학교 진입로 포장마차에서 벚꽃 맞으며 막걸리 먹고 한번 대취해 보리라.
유채꽃 사이를 누비며 짐승처럼 하늘을 외쳐 불러보리라. 길고 혹독한 겨울 끝에 한반도 남단 제주에서 간신히 움튼 봄은 이제 바다를 건너 남도의 등고선을 따라 밤낮없이 북진하겠다.
천우사화(天雨四花)라고 붓으로 크게 쓴 옷자락 끌며. 그대들 죄다 옷 갈아입고 나와 꽃 마중하라. 하얀 종이를 넣어 편지 보내면 까맣게 채워 답장하라. 세상의 봄은 영원히 오가겠으나 사람의 봄은 살아 있는 동안 겨우 한철 아니겠는가.
(소설가·윤대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