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토니 애벗 호주 보건장관이 27년 전 버렸던 사생아를 찾았다며 기자회견을 했다. 방송 인터뷰 때 애벗 장관의 옷에 마이크를 달아주기도 했던 방송국 음향기술자였다. 19살 때 여자친구와의 사이에 낳아 입양기관에 맡겼던 아들이라는 것이다. 둘의 부자 관계는 한 달 남짓으로 끝났다. 호주 언론은 지난 22일 두 사람은 남남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DNA검사를 해본 것이다. 애벗 장관의 어릴 적 여자친구에겐 다른 남자친구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옥스퍼드 대학의 브라이언 사이키스 박사는 DNA에 새겨진 혈통 족보를 캐는 분자생물학자다. 그가 ‘사이키스’란 성(姓)을 가진 사람들의 DNA를 조사해봤다. 그랬더니 사이키스 가문의 족보가 700년 전의 한 조상에게로 모였다. 그러나 사이키스 박사 연구에선 사이키스 가문 여자들이 낳은 자식의 1%는 다른 가문 남자들의 피가 섞여 있다는 생각지도 않은 결과도 드러났다.
▶기원 전 53년 중동지방으로 원정을 나갔다가 전쟁에서 패한 후 행방불명된 고대 로마군단 6000명이 있다. 이들의 후손이 중국 간쑤(甘肅)성의 한 마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DNA조사로 밝혀졌다. DNA가 2000년 전 조상이 누군지를 밝혀준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어느 유전학자는 미국 흑인들이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 출신인지를 가르쳐주는 장사까지 하고 있다. 한번 검사해주는 데 300달러씩 받는다.
▶다국적 연구팀이 13세기 몽골 제국의 영토였던 지역에 사는 주민의 8%가 칭기즈칸의 후손들이라는 논문을 2년 전 발표했다. 숫자로 따져서 1600만명이다. 과학자들은 “한 집안의 혈통이 800년 만에 어떻게 그렇게 퍼질 수 있는가”라며 놀라워했다. 페르시아의 역사가 주바이니는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진작에 갖고 있었다. 그는 ‘세계 정복자사(史)’에서 “싸우지 않을 때 그들이 뭘 했겠는가”라고 되물었던 것이다. 칭기즈칸의 장남이 여러 민족의 후궁들에게서 낳은 아들만 40명이다.
▶'DNA 인류학'에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부계(父系) 혈통을 가려내는 'Y염색체 조사법'과 어머니에서 딸로 전달되는 모계(母系) 혈통을 확인하는 '미토콘드리아 DNA 조사법'이 있다. 두 조사의 결과를 비교해보면 여자 혈통의 이동성이 훨씬 두드러진다고 한다. 남의 땅으로 시집 가 자식을 낳는 여자들이, 자기 고향을 떠나 씨를 뿌리는 남자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이제 인류의 역사는 기록과 발굴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실험실에서도 쓰여지고 있다.
(한삼희 논설위원 shh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