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장치를 만지며 25년간 살아온 정호목씨. 그는“다른 일을 해보자는 유혹도 많았지만 한 우물을 파야 뭔가를 이룬다고 믿었다”고 했다.

“역사에서 지혜를 얻어 세상을 밝혀 보려고 사학을 전공했는데…. 전공과는 거리가 너무 먼 사업을 하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어쨌든 세상을 밝히며 살고 있으니 재미있지 않아요?”

정호목 (鄭鎬牧·53·씨앤씨 일렉트로닉스 대표)씨의 삶은 ‘불 밝히는 인생’이다. 공연장 무대에서부터 대형 빌딩 외벽, 교량 등에 이르기까지 조명 시스템을 설치해 빛의 마술을 빚는 게 그의 일이다. 올해로 25년째다. 원래는 공연장 무대에 조명등과 컨트롤 시스템 등 하드웨어를 설치하는 게 주업무였지만, 96년 건축물 외부를 밝히는 ‘경관 조명’을 시작한 뒤부터 그의 회사는 ‘조명 디자인’이라는 예술적 작업까지 해낸다. 작년 한해 매출이 124억원이나 된다. 10년째 쌓은 정씨의 노하우는 이제 해외 수출까지 눈앞에 두고 있다. 그는 “중국측으로부터 허난성 뤄양(洛陽)의 석굴과 마애불에 대한 경관 조명을 해달라는 오퍼를 받고 현재 상담 중”이라고 밝혔다.

골프 친구들은 정호목이라는 그의 독특한 이름을 ‘虎木’이라 풀이해 ‘타이거 우즈’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의 진짜 애칭은 ‘빛에 빠진 남자’다. 인생의 첫 단추는 뜻밖의 일로도 꿰어진다.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할 때만 해도 그가 조명 분야 일을 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무역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갑자기 실직, 80년 친척 소개로 인쇄 및 조명기기 공급업체로 옮기게 됐다. 조명 분야와 인연을 맺는 순간이었다. 그곳에서 14년을 일하다 94년 ‘씨앤씨’를 창업했다.

“꿈꿨던 일은 아니지만 이게 재미있더라고요. 우리는 어떤 사물을 보고 있다고 여기지만 실은 사물에서 튕겨져 나온 빛을 보고 있는 거죠. 그러니 빛을 만드는 우리가 세상의 풍경을 빚는다 생각하고 일합니다.”

특히 무뚝뚝한 건조물에 형형색색 빛으로 표정을 불어넣는 경관조명의 재미가 쏠쏠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회사는 여수 돌산대교, 부산 광안대교 등 대형 건조물을 비롯해 고려대 백주년기념관 등 서울 시내 대형 빌딩의 밤 풍경을 빚었다. 그는 색을 화려하게 변화시키는 등 건축물 조명에 이벤트 연출효과를 도입하는 데 앞장섰다. 2000년 24대의 조명등을 설치해 날마다 시간마다 색채가 바뀌게 디자인한 여수 돌산대교 조명은 공공 건축물로선 당시 유례없던 사례였다고 정씨는 말했다.

“건축물이나 빌딩 외벽 조명은 수천 수만명이 보는 작품입니다. 색채 변화를 주려다 잘못하면 나이트 클럽처럼 어지럽게 됩니다. 문제는 균형 감각이죠.” 서울시는 마침 한강 교량 조명들 중에 ‘푸른 빛이 우울한 느낌을 준다’ ‘자살 충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등 시민들의 문제 제기가 있자 15일 이를 개선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관조명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늘 새로운 불빛을 고민하고 어디를 가도 빛에 주목한다. 한해 해외 출장이 15회가 넘는다. 특급 호텔에서 모임을 가지다가도 특색 있는 조명 설비를 보면 바로 수첩을 꺼낸다.

“에너지를 절약한다며 밤에 가로등도 끈 시절이 있었지만, 조명을 더 이상 낭비라고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운 밤 불빛으로 사람들 기분이 좋아지고, 신나서 일하게 한다면 이것만큼 생산적인 게 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