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민


일본의 한국 지배가 "오히려 축복이었다"는 한승조 교수의 일본 잡지 기고는 일제시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한국근현대사의 큰 물음을 다시 한번 제기했다. 한 교수의 '망언'(妄言)을 규탄하는 국민적 분노의 함성이 높고, 급기야는 한 교수 본인은 물론 그가 봉직했던 고려대까지 사과 요구에 직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사회 일각에서는 한 교수의 입장에 동조하는 의견도 피력되는 등 사태는 쉽게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번 문제는 한국 내부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또 다른 당사자인 일본도 '한승조 파동'에 관심을 가질 것이고, 한·일 간의 논란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각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이제는 '민족 감정'에 따른 흥분을 누그러뜨리고 도대체 일제시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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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를 바라보는 한국의 고전적 입장은 '수탈론'이었다.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여 근대화를 가로막고 식량과 자원 등을 약탈하였다는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대부분 한국인의 경험에 바탕을 둔 이런 인식은 학계로 그대로 이어져 오랫동안 별다른 의문 없이 통용됐다.

이런 통념에 도전을 던진 것은 일제시대에 한국의 근대화가 본격화됐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이었다. 일부 일본 학자들이 일제 통치의 '시혜(施惠)'를 주장한 것은 일찍부터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사학자들이 실증적 연구를 바탕으로 일제시대의 '경제적 발전상'을 주장하면서부터였다. 이 주장은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렇게 시작된 '수탈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의 논쟁은 평행선을 달리며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한국도 소장·중견 학자 중에서 고전적인 수탈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한 최근에는 학계 일부에서 1930년대 서울 등 대도시에서 나타난 근대적인 사회상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그러면 이런 사실이 한승조 교수 등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인가?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우리가 이룩한 '근대화'의 성과가 식민 당국에 의해서만 이룩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시 국내에서 활동했던 민족운동가들은 식민지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근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적어도 1930년대 중반까지는 언론·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한글 보급과 교육 확대, 산업 건설 등에 힘쓰는 한편 식민 당국에도 근대화 시책의 시행을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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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의미 있는 근대화의 지표들은 이런 한민족의 적극적 노력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19세기 후반부터 활발하게 계속돼 온 자주적 근대화 운동의 연장선 위에 있다. 물론 식민지 상태에서 이룩된 근대화는 일그러진 모습이지만 이는 우리만의 상황이 아니며, 이미 국제학계에서 '식민지적 근대성(Colonial Modernity)'이라는 개념으로 정립돼 있다.

결국 '식민지 미화론'의 잘못은 우리 조상들이 피땀 흘려 이룩해 놓은 근대화의 성과를 몽땅 일제(日帝)의 공으로 돌려버리는 데 있다. 이번과 같은 발언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한민족이 가장 어려웠던 시절인 20세기 전반기에 민족운동가들이 어떻게 고난을 헤치며 근대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보다 깊이 이해해야 한다.


(이선민 · 문화부 차장대우 sm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