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익단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지원하는 출판사 후소샤(扶桑社)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2005년 개정판이 '조선의 근대화를 도운 일본'이라는 별도의 장(章)을 신설해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노골적으로 미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판 교과서는 또 현행판의 '일제 식민통치에 의해 조선인민들이 고통받았다'는 내용은 삭제하는 대신, 일제의 창씨개명이 당시 조선인들의 희망에 따라 이뤄진 것처럼 왜곡한 내용을 새로 포함시켰다. 같은 출판사 발행 공민(사회) 교과서는 독도 전경 사진을 넣고 '한국과 일본 간 영유권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이름)'라고 설명하는 내용을 새로 포함시켰다. 새 역사 모임은 후소샤 교과서의 점유율을 현행 2001년판의 0.039%에서 2005년판에선 1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일본은 최근 몇 년간 분명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한국과 관련해선 이상 징후가 더욱 심각하다. 일본 시마네현 의회는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됐던 1905년으로부터 100주년을 기념한다며 '독도의 날' 조례 제정을 강행했다. 다카노 주한 일본대사는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 외신기자회견 중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번 교과서 왜곡 기술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움직임은 노골적이고 계산된 대한(對韓) 도발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일본 내 일부 우익 세력들이 간헐적으로 망언을 내뱉고 나면, 외무성을 비롯한 일본 정부가 진화에 나서는 모양새마저 사라졌다. 마치 한국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시험이라도 해보겠다는 듯이 도발 수위를 높여왔다.
일본은 20세기가 개막도 하기 전부터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수탈하고, 침략과 학살을 통해 이웃 국가들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가해자였다.
이 가해자 일본이 2차대전 때 원자폭탄 피폭(被爆) 체험만을 확대 부각시킴으로써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모습을 바꾸려고 꾸준하게 시도해 왔던 것이 전후(戰後) 60년의 일본 역사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미국에 대해서는 공식으로나, 또 교과서 기술을 통해서나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정당했다'는 주장을 제기한 적이 없다. 반면 일본은 자신이 식민지배, 강제동원, 학살 등을 통해 고통을 준 주변 국가들에 대해서는 거듭되는 사실 왜곡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덧나게 해왔다. 일본 전후 대외(對外) 관계사의 이런 '비굴'과 '교만'의 두 얼굴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엔 안보리를 비롯한 세계정치무대에 올라서려는 일본의 정치적 포부를 좌절시키는 주요 원인이었다.
'비굴'과 '교만'이라는 두 얼굴은 한국과 중국에 대한 이중적 태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해 중국으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고 일본은 이렇다 할 반론도 펴지 못했다. 그러면서 유독 한국을 향해서는 노골적인 교과서 왜곡과 '독도는 일본 땅'이라며 영토침범 의사까지 공공연히 하고 나서고 주한 일본대사가 오히려 앞장을 서는 모습을 보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이 어떻게 비쳤기에 이 시점에서 왜 이렇게 일본으로부터 거듭된 수모를 당하고 있는가를 냉철하게 되물어보면서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적으로 얼마나 무력(無力)하게 보였고, 외교적으로 얼마나 무능(無能)하게 비쳤으며, 동맹의 선택에선 얼마나 어리석게 보였었나를 스스로 따져묻고 민족의 자존심과 영토의 보존, 국민의 보호라는 국가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번쩍 깨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임기 중 과거사 문제를 재론 않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도 국민과 언론이 문제삼기 전에 정부 내에서 먼저 논의되고 정리됐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정부는 일본의 이런 파상적인 공세가 한국이 국제적으로 고립돼 가고 있는 것으로 보고, 그런 정세를 타고 이용해 보겠다는 전략적인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지를 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정부가 국가와 국민의 존엄과 안전을 지켜내지 못하면 국민들이 스스로 자위(自衛)에 나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