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미국 하와이대학 동서센터의 수석고문인 조이제 박사와 하버드대학에서 한국현대사를 담당하는 에커트 교수가 편집하고 총 21명의 학자들이 20편의 논문을 수록한 총 583쪽 분량의 수준급 저서이다. 구성은 총론과 다섯 분야(정치·경제·과학·사회·국제)로 돼 있다. 한국 학자들뿐만 아니라 미국·일본·중국·러시아의 학자들이 참여한 상당히 방대한 책이다. 그리고 국내 저자들은 대부분 박정희 시대에 정책에 참여하였거나 연구 업적을 남겼던 세대로, 대체로 박정희와 박정희 시대에 대하여 애정을 가진 연구자들로 구성된 게 특징이다.

조이제 박사가 밝힌 "대한민국 경제사에 남긴 업적만을 객관적으로 조명할 수 없을까?"라는 문제의식이 이 책의 편집 방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에 의하면 이 책은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한국 근대화에 관한 종합 참고서"이고, 집필과 번역에만 12년이 소요된 야심작이라 한다. 이 책은 박정희의 철학을 "경제가 국가안보와 통일, 그리고 민주주의의 기초가 된다"고 요약하고 있다(188쪽). 그리고 5·16도 제대로 보려면 해방 이후 16년간의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주체세력들의 민족주의가 형성된 1930년대부터 보아야 한다는 에커트 교수의 주장은 특기할 만하다. 이 책은 논쟁사적으로는 한국 경제발전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연속성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우선 대표 편집자인 조이제 박사의 총론과 공동 저자들의 개별 논문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다. 총론은 박정희 시대의 모든 것을 저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과감하고 단선적인 역사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반면 다른 글들은 경제나 사회의 사실을 평범하게 전달하고 있다. 12년간의 야심작이라고 하지만, 사실 대부분 1980년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총서(叢書) 시리즈로 다룬 바 있는 방대한 양을 몇 편의 논문으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주마간산 격인 인상이 없지 않다. 그리고 12년 전에 집필이 시작된 탓인지, 경제위기 이후에 한국 경제와 박정희 시대에 대하여 국내외적으로 심층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주요 정치경제적 쟁점들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는 점이 아쉽다.

류상영

이 책의 핵심은 총론이다. 우선 "경제만을 객관적으로 다룬다"는 접근법이 한계를 갖는다. 박정희가 갖는 야누스의 얼굴(정치적 독재자와 경제적 리더)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한국학계가 이에 대한 방법론적인 해답을 고민 중이지만, 필자는 이에 대한 고민은 덮어버리고 자기 생각들을 너무도 과감하게 주장하고 있다. 조이제 박사는 학자 출신임에도, 최근의 반(反)박정희 논지에 대한 반작용인지 모르지만, 찬(贊)박정희 논지를 보기 드물게 강한 톤으로 밝혔다. "조선이 일본 등 열강에 의하여 강압적으로 개방되지 않고 스스로 개방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으로 식민지 시대 일본의 역할을 평가하고, 박정희시대 이후 한국을 "일반 대중들의 변덕스러운 조급성과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매체, 민주주의를 내세워 이들을 조종한 부도덕한 정치지도자"들이 만들어낸 '문란한 경험'으로 규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승만을 제외한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까지 주저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대목들은 조이제 박사가 밝힌 "경제만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겠다"는 자기 전제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고, 학술적 평가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대목들이다. 이 대목이 본문의 다른 많은 논문들의 진의를 왜곡할 우려도 없지 않다.

박정희는 공(功)과 과(過)를 동시에 갖는다. 장점은 장점대로, 단점은 단점대로 되새기는 성숙한 분석이 절실하다. 역사적 평가로나 학술적 연구로나 그러하다. 이 점은 박정희에 대한 찬반 그룹 모두에게 요구되는 사항이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대립하는 가운데, 많은 정치경제적 쟁점들과 역사적 교훈들이 분석없이 재단되고 묻혀버리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도 자칫 폐쇄적이고 출구 없는 '동굴의 신화'에 갇혀 버린 게 아닌지 안타까움이 가시지 않는다.

(류상영 연세대 교수·정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