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도시법 통과 이후 친여(親與) 인터넷 사이트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칭찬하는 글을 자주 본다. "박근혜 잘 한다" "다시 봤다, 박근혜" "성숙한 박근혜"란 제목이 붙은 글들이다. 칭찬의 요지는 대충 이렇다. 박 대표가 민주적으로 당론을 모으는 과정을 거쳤고, 당론이 정해진 뒤로 흔들림이 없었으며, 법 통과 이후에도 민주 절차를 무시하는 독불장군들에 맞서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툭하면 꺼내던 '유신공주' '수첩대표'라던 비아냥은 사라지고 "박근혜는 더 이상 박정희의 딸이 아니다"라는 호평까지 따라붙는다.
골수 여당 지지자들로부터 칭찬받는 야당이란 결국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움직였다는 말이다. 과거 같았으면 야당대표에 대한 조사(弔辭)나 다름없다. 여당이 살리려는 야당인사는 반드시 정치적으로 죽은 게 야당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앞으로 박 대표의 운명도 야당사의 이 법칙을 따르게 될 것인가?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과거의 야당과 오늘의 한나라당을 같은 잣대로 보기 어려운 측면도 감안해야 한다. 이런 전제 아래 이번 일을 복기(復棋)해보자. 만일 한나라당의 지휘봉을 박 대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잡고 있었더라면 이번보다 더 나은 결과가 나왔을까? 명백히 그랬을 것이라고 한나라당의 다수가 믿고 있다면 박 대표의 운명은 서서히 기울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반대로 그랬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나라당은 이미 작년 총선 전에 수도 이전에 동의했다. 충청표를 조금이라도 붙잡아보겠다는 정치적 계산 때문이었다. 그때는 박 대표 등장 이전이다. 한나라당은 총선 후 헌재의 위헌 결정이 나오자 잠시 웃고 박수쳤으나 이내 표를 따져야 하는 냉엄한 현실로 되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한나라당의 정치 셈법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도 않았다. 이전 지도부와 박 대표 체제의 결정이 다르지 않았듯, 박 대표가 아닌 다른 지도부가 있었다고 해서 다른 묘책이 나왔을 것으로 선뜻 단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은 여야의 행정도시법 합의 직후 "한나라당마저도 노무현 대통령이 접수했다"면서 "나는 요즘 한나라당에 있어도 한나라당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늘의 한나라당을 어제의 한나라당이 아니라고 보는 인사들이 오늘의 한나라당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의 절절한 토로다. 박 대표가 죽어야 한나라당이 진짜 야당이 되고 살길이 열린다고 주장하는 이들 중에는 이처럼 '어제의 한나라당'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는 인사들이 적지 않게 섞여 있다. 한나라당의 이런 모습 역시 박 대표의 운명을 쉽게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한나라당이 여당에 끌려다니며 어정쩡한 타협을 되풀이하는 것은 야당으로서 죽는 길이란 반(反)박대표측 주장은 일리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제로 돌아가는 것이 한나라당의 살 길일 수는 없을 것이다. 당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를 지키지 않고 국회 회의장에 못질하는 방식의 투쟁이 더 이상 선명투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도 아니다.
과거의 야당은 민주화라는 목표를 향해 밀고나가기만 하면 됐다. 지금의 한나라당은 오랜 여당에서 야당으로 밀려나 갈 길을 새로 찾아야 하는 입장이다. 그 길은 투쟁과 타협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쉬운 길이 아니다. 싸우되 무슨 생각으로 싸우고, 타협하되 어떤 철학 아래 타협하느냐를 보여줘야 한다. 국민들이 끊임없이 한나라당에 변화를 주문해온 것도 새로운 야당으로서의 생각과 철학을 알고자 하기 때문이다. 박 대표가 지금 곤경에 처한 것이나 반(反)박대표 진영이 미더움을 주지 못하는 것은 모두 국민들의 이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문제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 한나라당 자체라는 말이다.
(홍준호 ·논설위원 jhho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