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혁명의 원로나 공산당 간부의 자제나 친인척들인 이른바 ‘태자당(太子黨)’ 출신들의 등용 기준도 능력 위주로 바뀌었다. 이들 중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하고 있는 사람이 왕치산(王 山·57) 베이징(北京)시 서기다. 야오이린(姚依林) 전 부총리의 사위로, 2003년 베이징이 사스(SARS·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로 위기에 처했을 때 베이징 대리시장으로 급파됐다. 시민 수만명을 격리시키고 전용 병동을 초고속으로 건설해 사스 진압에 결정적 기여를 한 성과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중국 8대 원로인 보이보(薄一波·97)의 넷째 아들인 보시라이(薄熙來·55) 상무부장은 다롄(大連) 시장 시절 외자 유치 등으로 능력을 발휘, 차세대 후보군 핵심으로 진입했다. 시중쉰(習仲勛) 전인대 전 부위원장의 아들 시진핑(習近平·53) 저장(浙江)성 서기도 실력자다.

1997년 덩샤오핑(鄧小平), 류사오치(劉少奇), 후야오방(胡耀邦)의 자녀들이 당중앙위원에 대거 탈락한 것도 실력위주로 재편되는 중국 지도부 형성과정의 한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