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주년인 올해의 3·1절은 일제시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학자 민세(民世) 안재홍(安在鴻·1891~1965) 선생의 40주기가 되는 날이기도 하다.
1일 사단법인 민세 안재홍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경기도 평택시 송탄문예회관에서 열린 ‘민세 안재홍 선생 제40주기 추모문화제’는 중도우파의 입장에서 민족통합과 국가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대한민국의 건국에 힘쓴 민세의 정신을 기리는 자리였다. 최근 “대한민국의 건국은 분단을 고착화시킨 잘못된 역사”라는 주장이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마당에, 대한민국 건국이 현실적으로 가장 적절한 선택이라고 판단했던 민세의 사상은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은 이날 추모사에서 “UN의 협력을 받아 대한민국을 세우는 것이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으로서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고 주장한 민세의 정견은 당시 가장 값진 정견이었다”며 “민세는 통일의 이론적 출발점을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윤대식 충남대 연구교수는 추모강연에서 “다 모여서 의논하고 처리한다는 ‘다사리’ 이론은 의회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며 “민세는 지속적 항일 투쟁을 벌인 지사(志士)로서 나약한 지식인이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1924년 조선일보 논설기자로 입사한 민세는 1927년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합작단체인 신간회의 총무간사를 맡았다. 당시 신간회 회장은 조선일보 사장인 월남 이상재였다. 민세는 이후 8년여간 조선일보에 재직하며 주필·부사장·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9차례에 걸쳐 7년3개월간 옥고를 치러 언론인 중 최장기 투옥생활을 기록했으며 1950년 6·25전쟁 중 납북돼 1965년 3월 1일 평양의 한 병원에서 타계했다.
민세는 광복 후 “근대국가 건설을 위해 민족의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미 군정하 민정장관을 지내며 좌우가 모두 참여하는 민족국가를 건설하려고 했다. 그러나 소련의 점령하에 있던 북한이 UN 주관하의 단일정권 수립을 거부하자 민세는 통일국가의 건설이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판단하고 ‘차선’으로 대한민국의 수립을 지지했다. 민세는 1950년 5·30선거에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9월 26일 북한군에 납북됐다.
이날 추모행사에는 1990년대 말까지 발간된 ‘안재홍선집’(지식산업사) 중 누락된 부분을 완간한 자료집의 봉정식도 있었다. 이 자료집에는 일제시대 조선일보와 광복 후 한성일보에 실린 논설, 미군정 민정장관으로 주고받은 공문 등이 포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