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째 장기집권 중인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26일 대통령 직선제 수용을 전격 발표했다. 무바라크는 1981년 이후 형식적 선거를 통해 4번 당선됐으며, 오는 9월 대통령 찬반투표를 통해 5번째 집권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야당의 직선제 요구를 받아들인 것은 '놀랍고 극적인 반전'이라고 AP통신은 평가했다. 이집트는 1952년 왕정 타파 이후 한 번도 직선제를 경험하지 못했다.

◆직선제 전격 발표

무바라크 대통령은 26일 국영TV로 전국에 방송된 연설에서 “국민의회와 슈라위원회(상원에 해당하며 헌법개정 제안권을 가짐)에 헌법상 대선 규정의 개정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면서 “복수 입후보, 직접 비밀투표, 정당의 선거 참여 등을 보장하는 헌법안을 국민투표에 붙이겠다”고 말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기습 발표'였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헌법 개정안은 오는 9월 대통령 찬반투표 이전에 국민투표에 회부되며 차기 대통령 선거는 새 헌법에 의해 직선제로 실시된다.

◆미국의 압력 수용

무바라크의 직선제 수용은 미국의 압력이 가장 큰 요인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자유의 확산’을 화두로 삼은 이달 2일 국정연설에서 “이집트가 중동 민주화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며 무바라크를 압박했다.

또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3월 첫째 주로 예정했던 이집트 방문을 25일 돌연 취소했다. 이는 이집트 검찰이 지난 1월 21일 야당 지도자 아이만 누르를 구금한 것에 대한 항의 표시로 풀이된다.

이집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 해결을 위한 중재역을 맡았고, 미국은 이집트에 연 20억달러의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무바라크로서는 미국이 자국 내 상황에 대해 잇따라 '경고'하고 나선 것은 이 같은 우방 관계에서 발을 뺄 수 있다는 신호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아프가니스탄 대선, 팔레스타인 수반선거, 이라크 총선 등 지난해 이후 미국에 의한 타율적인 아랍 민주화 과정이 속속 진행된 점에도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분석된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26일 수도 카이로 북부 메누피아대학에서 정치개혁 방안에 대해 연설하던 중 대통령 직선제 수용을 전격 발표하고 있다.

◆후속 민주화 조치가 관건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환영하면서도 직선제 채택이 실질적 민주화로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미국은 ▲야당 후보의 자유로운 선거운동 ▲국영 언론의 공정한 선거 보도 ▲국제선거감시단 활동 등이 보장돼야 한다는 자세라고 뉴욕 타임스가 27일 보도했다.

현재 이집트는 집권 국민민주당(NDP)이 장악한 국민의회가 3분의 2 찬성으로 대통령 후보를 단수 지명한 뒤, 국민투표로 찬반을 묻는다. 무바라크는 부통령이던 81년 당시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된 뒤 대통령직을 승계했고, 이 방식으로 대통령에 4차례 거푸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