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23일 인도 안드라프라데시 주도(州都) 하이드라바드에서 뭄바이 국제공항으로 왔을 때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을 봤다. 놀랍게도 그들 대부분이 최신 전자제품을 갖고 있었다.
이튿날 인천공항을 거쳐 대전에 있는 화학연구소 기숙사에 도착해 밤새 뒤척이면서 한국에 잘 온 것인지 생각에 잠겼다. 다음날 아침 식당에 갔을 때 식당 한국인들은 내 말을 못알아 들었기 때문에 나는 비스킷과 우유로 때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 저녁엔 젊은이들이 조깅하는 모습이 보였다.젊은이들은 시간날 때 마다 축구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자원봉사단체인 인터내셔널친선협회(IFN)와 셈인터내셔널(SEM)이 큰 도움을 줬다. 이들은 귀중한 시간을 내서 여행과 등산과 문화활동을 지원했고, 한국어를 가르쳤다.
한국은 어느 곳을 가든지 안전했다. LG·현대중공업·SK·포철등 산업시설을 방문하니 젊은이들과 나이든 종업원들이 잘 조직돼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번영은 한국인들의 헌신과 열정에 의해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됐다. 그렇지만 어떤 한국인들은 어떤 종교도 믿지 않았는데 이들에겐 일이 곧 예배이다.
처음에 한국사회에 적응하는데 불편을 겪었다. 화학연구소에서 제공한 방에는 바퀴벌레가 많았다. 여러번 요청했지만 청소가 되지 않았다. 6주간 프랑스를 갔다 올 일이 생겨서 열쇠를 맡기면서 방청소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돌아와보니 청소했다는 것이 방안의 모든 물건을 다 갖다버리고 말았다! 나는 돈을 들여 필요한 물건을 다시 사야했다.
또 국제공중전화카드를 20만원주고 샀는데 어쩐 일인지 전화가 걸리지 않았다. 나중에 교환원과 연결돼 물어보니 돈이 다 떨어졌다는 것이다. 너무나 놀라서 직원들에게 항의했지만, 자기네 시스템은 잘못된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통신(KT)을 통해 내가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확인을 받고 다시 전화카드를 판 회사에 항의했으나 그들은 말을 계속 바꿔가면서 책임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사랑과 애정을 나눈 한국인들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 나의 한국인 친구들이 인도의 대표적인 과학도시인 하이드라바드를 하루빨리 방문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타이무 아타르(Taimur Athar·48)박사
인도화학기술연구소(CSIR)소속 아타르박사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초청으로 2004년1월부터 올1월까지 한국화학연구소에서 초빙과학자로 와 암 치료물질을 연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