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현판 교체에 대한 문화재청 방침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처음엔 조선시대 정조 임금의 비석글씨 중 '光' '化' '門' 세 글자를 집자(集字)해 쓰겠다고 했다가 비난이 일자 이번엔 1865년 중건 당시 걸렸던 현판의 사진을 디지털로 복원하겠다는 궁색한 발상을 내놓았다.

'광화문 현판'과 관련된 논란의 핵심은 왜 정부가 콘크리트로 된 광화문 자체를 복원하는 일보다는 오는 8월 15일 광복절 60주년 기념 행사 때 무리하게 현판만 바꾸려 하느냐에 있다.

이기숙 서예가·서울 송파구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70%를 복원하든 90%를 복원하든 그것은 아무런 문화재적 의미도 가치도 없는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붓글씨를 쓸 때 3자를 쓰거나 3000자를 쓰거나 한 작품을 쓸 때는 일회성(一回性)이 중요하다. 하루가 걸리는 큰 작품이라도 똑같은 먹물로 한 번에 써내야 그 운(韻)과 기(氣)가 잘리지 않고 살아있는 작품이 되는 것이다. 애초에 글씨를 집자해 현판을 만든다는 발상부터가 문화재청의 수준을 의심케하는 것이었다.

현판이란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편액(扁額)이라고 하는 게 옳다. 후한 시대 허신이 지은 '설문해자'에 보면 진나라 때 유행했던 8가지 글씨체 중 여섯 번째가 바로 편액 글씨체인 서서(署書)였다. 편액을 쓰는 글씨체가 따로 있었다는 얘기다.

아무리 정조대왕의 글씨가 훌륭하다 해도 한 사찰에 내린 글씨를 모아 조선 정궁의 대문 편액을 삼는 것은 서예, 서도, 서법에서 허용되지 않는 일이다.

현판으로 인한 사화도 있었다. 조선 중기에 함양군 객사에 걸린 유자광의 제영(題詠) 현판을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와서 떼어냈는데 뒤에 유자광이 앙갚음으로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탈잡아 무오사화를 일으켰던 일이다.

광화문의 현판은 문루에 높이 달려서 우리나라를 표상하는 얼굴로 외국 국빈들을 맞는다. 그곳에 걸릴 글씨가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나라는 같은 한자문화권의 중국 일본 등 이웃나라들과 서법 교류가 빈번하다. 서법이 생활화 되어 있는 그들은 고궁이나 옛 건물에 걸려있는 붓글씨를 보면 그 글씨가 어떤지 다 안다. 글씨의 외형뿐 아니라 그 글씨에 기(氣)가 살아있는지 맑은지 흐린지 풍성한지 가난한지 거센지 평온한지 옹졸한지 너그러운지 속이 모두 보이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광화문 현판 교체를 그렇게 서둘 일이 아니다. 역사가 바뀌고 시대상황이 변해도 후대에 우리 시대의 수준을 전하는 문화유산으로 영원히 남을 수 있는 현판을 준비하는 것이 지금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