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하늘을 누비는 외국인 형제가 있다. 대한항공에서 조종간을 잡고 있는 러시아 출신 블라디미르 필라토프(58)와 동생 알렉산드르 필라토프(47)가 그들. 전체 대한항공 조종사 1993명 중 외국인은 209명이지만 ‘외국인 형제’ 조종사는 필라토프 형제가 유일하다.
형이 97년, 동생이 99년 입사, 한솥밥을 먹게 됐다. 필라토프 형제는 ‘조종사 가문’ 출신이다. 작고한 부친을 비롯, 맏형도 모두 여객기 조종사 출신이었다고 이들은 전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늘 비행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도 비행기 모형이었죠.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랄 것도 없이 우리 형제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조종간을 잡고 하늘을 날아야지' 하는 꿈을 가졌어요."
형은 원래 우주비행사나 공군 전투기 조종사를 꿈꿨으나 부친 권유로 여객기로 발길을 돌렸다. 4부자가 모두 조종사라 러시아에서 '필라토프가(家) 형제들'이라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라는 게 이들의 자랑이다.
각각 스무 살 때부터 조종사 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92년 옛 소련 해체 후 조종사의 근무 여건이 열악해지면서 해외 취업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 출신이라는 사실이 약점으로 작용,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던 97년 대한항공이 문호를 개방하면서 이들의 바람은 이뤄졌다. 그래서인지 한국을 “보은(報恩)의 나라”로 여기고 있다.
현재 수입은 러시아 항공사 다닐 때보다 4배 가량 늘었다고 한다.
이제 형은 한국물을 먹은 지 10년 가까이 되어가기 때문에 '반(半) 코리안'이다. 형이 "보드카보다 소주를 더 좋아하고, 삼계탕, 갈비, 김치도 첫손 꼽는 애호식품이 됐다"고 하자 동생도 "형에게 물들었는지 나도 비행이 없을 땐 이태원에서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는 게 한국에 사는 재미 중 하나"라고 했다.
이들은 여름엔 제주도, 겨울엔 용평에서 한국의 풍광(風光)을 만끽한다고도 말했다. 외국인 기장들이 모여 만든 한국 내 불우 아동을 돕는 기금에도 형제가 적극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