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점포를 새단장한 C은행의 서울 광화문지점에 가보면 일반 고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창구(현금 입출금 등)는 달랑 3개뿐이다. 반면 짭짤한 수익이 기대되는 대출·VIP(프라이빗 뱅킹)고객 창구는 9개로 늘어났다. H은행은 지난해 남대문 지점을 개조하면서 고객이 차례를 기다릴 때 앉는 소파를 등받이 없는 딱딱한 의자로 교체했다. 일반 손님을 많이 받지 않겠다는 얘기다. 이 은행이 창구에서 공과금 수납 업무를 중단한 건 이미 오래 전 일이다. 현금입출금 등 단순 업무는 수수료가 몇 푼 안되기 때문에 푼돈 고객은 되도록이면 발길을 끊어주었으면 하는 속내가 엿보인다.
C은행 고객인 차모(여·45)씨는 “은행들이 고객 친화형 점포로 바꾸겠다며 한참 공사를 하더니 정작 공사가 끝난 뒤에는 고객들에게 더 불편해졌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들의 이 같은 ‘일반고객 홀대 현상’은, 은행이 돈을 버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일반 고객은 줄여나가는 대신, 우량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일종의 부자(富者) 마케팅 전략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서민 고객은 여러모로 불편하겠지만, 수익을 올려야 하는 은행들 입장에선 돈 되는 고객에게 서비스를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국민, 우리, 신한, 하나, 외환, 조흥, 한국씨티 등 7개 대형 은행들의 올해 주요 경영전략이 ‘우량고객 확보’다.
일본 은행들은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요즘 일본 은행들은 일반 고객이 자주 찾아오도록 유도하기 위해 ‘대기시간 단축’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구조조정 등으로 은행 이미지가 나빠졌거나 기업영업에 치중해온 은행들이 이 같은 고객 친화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2003년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됐던 리소나(りそな) 은행은 지난해부터 ‘대기시간 제로(0) 운동’을 펼치고 있다. 마치 맥도날드 가게에서 햄버거를 사는 것처럼, 고객이 은행 업무를 신속하게 마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은행측은 법인 고객이 개인창구나 ATM을 독점하지 않도록 하고, 한꺼번에 고객이 몰리면 대출 담당자까지 창구에 나와 고객을 응대하도록 조직을 대폭 개편했다. 또 기계 사용이 서투른 주부·고령 고객을 위해 ATM 도우미 직원도 따로 배치했다. 고객과 똑같은 눈높이에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시중은행 처음으로 은행원이 모두 선 채로 고객을 대하는 ‘스탠딩 오퍼레이션’도 실시 중이다. 지점당 평균 대기시간은 1년 전 2분58초에서 현재 1분30초 정도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미쓰이스미토모(三井住友) 은행은 지난해 도쿄 내 8개 지점의 창구 혼잡도를 인터넷 홈페이지(www.smbc.co.jp)를 통해 실시간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항공권을 살 때처럼, 인터넷이나 전화로 방문 시간을 예약하면 번호표가 자동 발급되어 고객 휴대전화로 통지되는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UFJ은행도 기존의 ‘은행=줄서기’ 이미지를 없애려고 애쓰고 있다. 이 은행은 도쿄, 나고야, 오사카 지점에서 창구뿐 아니라, ATM의 대기인 숫자까지 휴대전화로 알려주는 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이 은행은 지난달 10분 이상 기다리는 고객 수를 전체 고객의 1%수준으로 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