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74세로 세상을 떠난 흑인 음악가 레이 찰스가 다시 살아난 듯하다. 13일 열린 제47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상’ 등 8관왕의 영예를 안은 데 이어 그의 전기(傳記)영화 ‘레이(Ray)’는 이달 말 열릴 아카데미상에 작품상 등 7개부문 후보에 올라 수상이 주목되고 있다. 생전에 시각장애와 인종차별의 벽을 넘은 ‘솔(Soul)의 거장’이 죽은 지 1년도 안 돼 음악과 영화로 동시에 부활한 것이다.
▶‘천재(genius)’란 별명을 지닌 그의 유작 표제는 ‘천재는 친구를 사랑해(Genius Loves Company)’였다. 듀엣 앨범을 안냈던 그는 “이젠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노래해도 좋을 때”라며 죽기 3개월 전 동료가수들과 함께 취입했다. 그
중에도 엘튼 존과 노래한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가장 힘들어’는 어떤 열창보다 진한 감동을 자아낸다는 평이다. 음정을 제대로 올리지 못한 채 꺼져 가듯 쇠잔한 소리는 흡사 인공호흡기를 대고 노래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일곱 살에 시력을 잃은 레이가 홀로 설 수 있게 키웠다. 어머니마저 먼저 떠나 홀로 된 그에게 음악은 생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그는 자서전에 “음악은 나와 함께 탄생했고 세상에서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설명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영화 ‘레이’는 동생이 익사하는 것을 보면서도 구하지 못한 죄책감, 음악 인생의 황금기에서 마약중독으로 겪는 고통 등 인간적인 아픔도 그렸다. 불굴의 그는 12번의 그래미상을 수상하며 재즈에서 로큰롤까지 두루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오르는 신화를 만들었다.
▶팝팬들은 60년대 레이 찰스가 부른 ‘아이 캔트 스톱 러빙 유(I can’t stop loving you)’를 잊지 못할 것이다. 돈 깁슨이 부른 컨트리곡을 다시 불러 빅히트시켰을 만큼 그는 장르를 넘어서 음악을 소화하는 ‘용광로’였다.
그는 가스펠과 컨트리, 리듬 앤드 블루스와 재즈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역동성과 흥이 넘치는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었다. 그의 음악은 춤을 추면서도 가슴이 시린 느낌을 갖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는 평을 듣는다.
▶레이 찰스는 음악을 통해 모든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음악은 나 자신이다. 내게서 음악을 떼어놓으려면 외과수술을 해야 할 것이다.”
그와 음악은 수술은 물론이고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한몸이라는 것을 마지막 명반(名盤)에 바친 그래미상의 영광이 말해준다. 그에 대한 팬들의 사랑 역시 시들지 않을 것이다.
(정중헌 논설위원 jhchu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