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문제는 이제 새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30일로 예정된 총선이 내전을 촉발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시기와 투표 절차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이는 미국의 '철수전략'에 대한 요구 때문이다.
많은 비판론자들은 미국의 노력이 시간적 제약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한다. 바람직한 철수전략의 전제조건은 인위적으로 설정한 시한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라크의 성과는 미국 외교정책의 향후 10년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이라크에서의 실패는 중동에서 과격파와 근본주의자들의 잇단 준동을 초래할 것이다.
미군의 성급한 철수는 옛 유고슬라비아에서처럼 내전을 초래할 것이다. 이라크 주변 국가들이 간섭과 개입을 본격화하면서 일대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바람직한 성과는 단지 실패의 결과를 회피한다고 해서 이뤄지지 않는다. 실행 가능한 전략이 필요하다. 성취 가능한 목표에 대한 자원 투입이 요구된다.
낙관론자와 이상주의자들은 일정한 시간 내에 이라크에 완전한 서구식 민주주의제도가 정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릴 가능성이 크다. 이라크는 오랜 세월 동안 종교적·인종적 분쟁에 시달리느라 민주주의의 대의제도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낙관론자들은 전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시아파(Shia派)와 15~20%의 쿠르드족(Kurd族)이 소수 수니파(Sunni派)의 지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민주적인 다수파가 형성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아파 지도자들은 이란의 신정(神政) 폐해를 목격해 왔기 때문에 민주화와 세속 국가의 이점을 잘 안다.
시아파가 주도하는 다원적 사회야말로 바람직한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정책이란 희망사항에 근거를 두어서는 안된다. 민주적 과정으로 이라크를 통일시키기 위해선 수적으로 다수인 시아파가 다수의 원칙을 어떻게 실현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담 후세인의 폭정에서 살아남은 시아파 지도자들은 조기 총선을 주장해 왔다. 실제로 30일이라는 총선일은 시아파 최고 지도자 알리 알 시스타니의 최후 통첩성 요구에 따라 정해진 것이었다. 다수의 원칙을 철저히 적용한다는 것은 새 정부의 정치적 정당성에 오히려 장애가 될 것이다. 소수파인 쿠르드족과 수니파는 영원히 적대 진영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로 탄생할 제헌 의회는 어느 정도 자주권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다음의 네 가지 목표에 지속적으로 주력해야 한다.
▲정치 권력을 이용해 어느 한 정파가 전에 수니파가 누렸던 (압도적) 지배권을 확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어떤 지역도 탈레반에 의해 테러리스트의 근거지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시아파 정권이 이란식이든 이라크식이든 신정체제로 변질되는 않도록 해야 한다 ▲'이라크 국가' 내에서 종교적 자치권의 여지를 남겨 놓아야 한다.
미국은 민족주의자와 종교 대표들에 의한 세속적 리더십의 출현을 고무하기 위해 모든 정파와 대화할 필요가 있다. 정치체제는 지역적 자치권이 강조된 연방제여야 한다. 만약 어떤 그룹이 이 조건을 벗어나는 주장을 한다면 그것은 곧 이라크 국가의 해체로 결과된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미국은 정권 재수립을 도모하는 수니파 세력과 평상 생활을 영위하려는 수니파 집단을 분리시켜야 한다.
인위적인 시한이 아니라 '임무 완성에 의한 이라크 철수' 전략은 이런 질문들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앞으로 단기간에는 반란 진압을 위한 주된 역할은 미국 혼자서만 감당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라크군이 수적으로나 전투력면에서 향상되고 총선 후 정치 건설이 진척되면 현실적인 철수전략이 생겨날 것이다.
철수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실패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의 기회가 주어져 있다. 그 기회는 반(反)테러전(戰)과 중동의 전환, 더욱 평화롭고 민주적인 세계 질서로 나아가는 중요한 한 걸음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조지 슐츠(George P Shultz) 전 미국 국무장관과의 공동 집필임
/ TMSI·트리뷴 미디어 서비스 인터내셔널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 ·전 미국 국무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