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線)에서 점으로'. 이문재의 네 번째 시집은 이렇게 한 시인의 내적 행로를 그려 보인다. 한 사람이 지금 국도를 따라 격포에 도착했다. 그곳은 물과 뭍이 만나는 '해발 제로'의 땅 끝. 그는 먼저 '꾹 눌러 전원을 끈다'. 휴대폰을 끄는 행위는 세속과의 단절을 의미할 것이다. 휴대폰은 '나'를 묶어 두는 일상적 현실의 강력한 족쇄인 셈. 격포에서는 휴대폰을 끄고 '문자 메시지'조차 보내지 않는다.
격포의 '더 나아갈 수 없는 어스름' 앞에서 시인은 '생애의 단층이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급기야 '목에 걸려 있던 휴대폰을 들어 / 파도의 이마를 향해 던진다'. 이제 세속적 공간과 완전하게 결별했다. 그리고 '천년 저쪽에서 달려온 별빛들'의 우주적인 시간과 조우한다.
그렇다면 격포는 어디인가? '내'가 걸어온 '선(線)'의 공간으로부터 한 점의 시간으로 문득 이동하는 망명지. 아무도 '나'의 근황을 모르는 공간에서 '나'는 비로소 오로지 '나만의 근황'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먼저 와 있다"는 시인의 말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보다' 먼저 와 있다는 것일까? 혹시 '나'는 '나'보다 먼저 와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격포' 이전에 격포에 벌써 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시인은 이 '제대로 어두워진' 땅 끝에서 생애의 경계와 만난다. 모든 망명지는 '선(線)'이 끝나는 '점'의 자리에 위치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선들이 어떤 움직임을 가진다면, '점'의 자리는 그 움직임이 정지한 지점. 한 생애 안의 움직임들이 이윽고 멈춘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이제 '나'로부터 망명하려 한다.
(이광호 서울예대교수·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