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사마 열풍'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글을 보면 한국 드라마가 일본인들에게 그간 잊고 지내왔던 어떤 것을 일깨워 줬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어떤 것이란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계산되지 않은 사랑, 즉 순정을 의미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사랑을 잊고 살아온 사람들이 일본에만 있을까? 한국의 사랑 얘기에 지나치게 익숙하다면 일본에서 만든 다음 3편의 작품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는 비겁하고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다. 잘생긴 바람둥이 젊은이가 하반신 불구의 소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 사랑이 자신의 인생에 유익하지 않음을 깨닫고 천천히 도망쳐 나간다. 여주인공이 장애인이라고 해서 카메라의 시선은 전혀 동정적이거나 가식적이지 않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요리 잘하는 예쁘장한 소녀를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외로움에 지친 나신까지 탐닉한다. 사랑은 영화처럼 지고지순하지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는 평범한 진리 위에 놓인 이 특이한 커플의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꽤나 복잡한 감동을 이끌어 낸다. DVD에서는 감독과 주인공들이 참여한 음성해설이 영화 분위기와는 반대로 상큼한 느낌을 준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줄여서 보통 '세.중.사'라 불리는 이 영화는 일본에서 7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 대작이다. 열도 전체를 눈물바다로 만든 작품치고는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떨어지는 편인데, '러브 레터', '4월 이야기'의 조감독 출신인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작품이다. 감독의 전작이 재일한국인을 소재로 한 'GO'라는 냉정한 영화임을 상기해 보면 고개가 갸우뚱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최루성 영화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디지털이 세상을 바꿔놓고 있는 지금, 카세트 테이프와 라디오 방송이란 80년대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소재로 우리 모두가 잊고 지내던 순수를 얘기하고 있다. 영화 '러브 레터'를 좋아하며 소니의 워크맨을 기억하는 30대 이상의 팬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국내에서 출시된 DVD는 일본판에 비해 화질이 다소 개선되어 있다.
■바람의 검심-추억편
'바람의 검심'은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이 입소문을 통해서만 알려지게 된 이유는 극장이나 TV를 통해 접할 수 없는 OVA(Original Video Animation) 형식으로 발매되었기 때문이다. (OVA는 비디오나 DVD 출시만을 목적으로 제작되고 판매된다.) 피의 비가 뿌려지는 잔혹한 사무라이 액션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중심을 관통하는 주제는 비극적인 사랑이다. 자신의 약혼자를 살해한 남자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접근하지만 결국 그 남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내용. 30분 정도만 보면 줄거리를 짐작할 수 있는 뻔한 스토리지만 전개 방식은 예사롭지 않다. 모든 대사가 한 편의 시에 비견될 정도로 예술성이 높고 음악도 최고 수준이다. 개인적으로는 죽기 전에 꼭 감상해야 할 재패니메이션으로 적극 추천한다. 국내에서는 DVD를 '추억편'과 함께 작품성이 다소 떨어지는 '성상편', '극장판'을 한데 묶어 박스 세트로 출시, 소비자들로부터 끼워팔기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박진홍·DVD프라임 대표 park@dvdprim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