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9월 19일 오후 3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시나(椎名悅三郞) 일본 특사를 만났다. 부인 육영수(陸英修) 여사가 재일교포 저격범 문세광의 총격에 숨진 지 35일 만에 일본의 진사(陳謝) 특사를 맞이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의 분노가 폭발했다. 한국측 수사 결과는 문세광의 배후에 조총련이 있는 것이 명백했으나 일본측의 수사는 조총련 쪽으론 가지 않고 있었다. 1시간45분 가까이 진행된 이날 면담에선 외교적 수사(修辭) 같은 것은 없었다.
“그동안 침묵을 지켜 왔으나…”라며 말문을 연 박 대통령은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말들을 쏟아냈다. 박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우리를 우방으로 생각한다면 상중(喪中)에 있는 대통령 가족이나 국민들이 슬픔과 분노에 차 있는 이 시기에…”라며 “일본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우방으로 인정할 수 없지 않느냐”고 했다.
박 대통령은 “(일본의 태도는) 정치와 외교, 법을 떠나 동양적 예의상으로 있을 수 없는 일” “일본 외무성에는 수재나 엘리트 관료들이 모여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어찌해서 이런 해석을 할 수 있는가”라는 등의 격한 말들로 일본을 성토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미국 청년이 일본 여권을 갖고 일본 관헌이 사용하던 무기로 미국 포드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부인이 살해됐다고 하면 일본 정부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질책했다. “일본이 대남 적화 공작 기지화되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는 20일 정부가 공개한 ‘박 대통령·시나 특사 면담요록’에 담긴 내용이다. 외교통상부는 해마다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문세광 사건(박 대통령 저격 사건) 관련 외교문서와 육 여사 장례식 등을 포함, 총 27건 11만여 쪽이다.
공개 문서에 따르면 74년 8월 15일 발생한 박 대통령 저격, 육 여사 사망 사건으로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국내에선 일본이 대한(對韓) 테러범의 기지가 되고 있다는 여론이 비등했지만 다나카 총리가 방중(訪中)하는 등 중국과 국교를 트려던 일본은 북한 쪽 조총련에 대한 수사에 미온적이었다.
9월 11일 박 대통령은 일본과 협상하고 돌아온 최영철 공화당 의원에게 “일본 총리 친서엔 조총련이란 언급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며 “일본이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면 단교 조치도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중공(中共)만이 제일이냐. (일본과 단교해도) 안보, 경제 문제없다”고도 했다.
미국까지 나선 중재 노력 끝에 성사된 것이 대표적인 지한파 시나 특사의 진사 방한이었다. 시나는 박 대통령의 분노에 “지당하신 말씀”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나카 친서엔 ‘조총련’은 없었고, 시나 특사가 말로 “문제의 본질은 조총련의 기본적인 성격인 바…”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