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문들이 전후 60주년을 맞는 신년 벽두부터 자위대 문제를 놓고 법석을 피우고 있다.
죽은 오부치(小淵惠三) 총리가 "자위대가 말라카 해협을 넘어서 인도양까지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게 1999년이다. 그로부터 5년이 걸리지 않아 해상자위대 함선을 인도양에 '상주'시켰고, 작년에는 전후 처음으로 '전투지역'인 이라크에 육상자위대를 파병했다.
이번에는 유엔결의 없이도 미국 요청만 있으면 언제라도 자위대를 파견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겠다고 한다. 그동안 자위대 해외파견 때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기사용을 할 수 있는지', '미군의 탄약 등 군수물자 수송이 가능한지' 등 시시콜콜한 문제를 놓고 매번 격론을 벌여왔었다. 앞으로는 그런 번거로운 절차를 아예 생략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고이즈미 총리는 '역대 총리가 10년 걸릴 일을 한대에 다 해치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이즈미 총리는 '국민이 반발해도 대미 우호관계 만큼은 유지한다'는 일본 전후외교 원칙의 성실한 추진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자위대의 성격 변화는 일본의 주체적인 선택이라기보다, 미국의 대일요구에 따른 측면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위대가 병력인원과 재래식 장비를 대폭 감축하면서 미국의 테러전을 지원하기에 편리한 체제를 갖춰 나가는 것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이해가 된다.
한국전쟁때는 미국 요청으로 해상보안청 선박이 기뢰제거를 위해 원산 부근 앞바다까지 파견돼 사상자를 냈다. 베트남 전쟁때는 주일미군 기지는 가장 안정된 출격 거점이었다. 한국처럼 군대를 보내진 않았지만, 베트남에서 보면 병참을 담당하는 미국 협조국이었다.
걸프전때는 후세인 대통령에 의한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비난이 높아져 다국적군 참가를 표명하는 국가가 줄을 이었다. 미국 입장에서 자위대의 파견은 그리 급하지 않았다. 대신 일본은 130억이라는 거액의 전비를 분담했다. 이라크 전쟁에서 다급해진 미국은 헌법을 무시해서라도 부대를 파견해달라고 억지를 썼다.
미국 고관들이 "부츠 온 더 그라운드(boots on the ground·전쟁터에 군화를)"라는 신호를 보내자, 고이즈미 총리는 "세계속의 미·일 동맹"이라는 말로 화답했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이 외면하는 상황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의 파병은 그만큼 상징성이 컸다.
후세인 정권 붕괴후 미국에선 '전후일본'이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렸다. 잿더미가 된 일본은 전후 미국에 철저하게 순응했다. 광대한 기지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오모이야리 예산'이라는 특별예산을 짜서 미군 주둔비를 냈다. 미국 입장에선 문자 그대로 '이상적인 동맹국'으로 바꿀 수가 있었다. 이제는 자위대 파병을 요구하면 '주체적'으로 응해준다.
미국에게 유엔은 신뢰할 수 없고, 나토도 말이 안 먹혀들고, 북한·이란·중국 등 분쟁의 불씨가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미국으로선 일본에 더 많은 분담을 요구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게다가 일본의 이익과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미국의 핵우산이 필요한 일본은 미국의 요구를 마지못해 수용하는 시늉을 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무기 판매 등을 통해 실속을 챙길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대응을 냉정하게 생각할 때다.
(정권현 도쿄 특파원 khju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