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초여름 삼국~통일신라시대 유적(서기 6~10세기 초반)으로 추정되는 경기도 하남시 이성산성 저수지 발굴 현장. 한양대 박물관 발굴팀은 저수지 개흙층에서 갈색 목재로 된 유물을 발견했다. 가운데 부분이 잘록하고 양 옆은 둥그런 형태. 영락없는 장구였다.
유태용 당시 발굴팀장(경기대 박물관 상임연구원)은 "직감적으로 장구라고 확신했다"고 회상한다. 물 속에 남아 있던 목재 유물은 수천년도 견딜 수 있지만, 발굴돼 직사광선을 받는 순간 빛깔이 곧 검게 변한다. 발굴단은 장구 주변 흙까지도 통째로 떠서 물이 가득 담긴 플라스틱 통에 담았다. 그것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보존책이었다. 발굴단은 보존 처리를 위해 이 유물을 문화재청으로 보냈다.
4년반 뒤인 2005년 1월 문화재청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장구'를 보존 처리한 뒤 한양대 박물관으로 되보냈다.
전체 길이 42.8㎝, 북채나 손으로 치는 북면 지름은 각각 17㎝·17.5㎝, 잘록한 가운데 부분(조롱목) 지름 7.5㎝, 두께는 북면 0.5~0.8㎝, 조롱목 부분 1.1~1.7㎝…. 송혜진 숙명여대 교수(국악사)는 "척 보아도 솜씨있게 만든 장구의 원형인 요고(腰鼓)"라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장구'가 나온 셈"이라고 지적했다.
인도에서 전파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요고는 장구의 원형이 되는 타악기. 길이 60~65㎝, 북면 40~45㎝의 현대 장구보다 더 작다. 예를 들어 고려 중기에 청자로 만든 장구는 길이가 52㎝ 정도이며, 중앙아시아나 고구려 옛 벽화 등에 등장하는 요고는 연주자 신체와의 비례로 볼 때 이보다 더 작은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요고의 크기가 작을수록 연대가 더 올라가는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장구는 오른손에는 북채를, 왼손은맨손으로 연주하는 악기이지만 요고는 모두 맨손을 사용한다.
우리나라에 요고가 언제 들어왔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요고를 연주하는 비천(飛天)이 고구려 고분인 중국 지안시 오회분 4호묘(서기 6~7세기 추정)에도 그려져 있고, 경북 경주시 감은사 삼층석탑(서기 7세기) 사리장치에서도 요고 연주자의 모습이 출토된 바 있어 삼국시대에 이미 도입됐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성산성에서 출토된 요고가 정확히 언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애초 발굴단은 주변 유물을 종합할 때 고구려 것으로 파악했지만 학계는 삼국~통일신라로 좀 더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국악계는 "1997년 광주(光州) 신창동에서 출토된 가야금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서기 1세기 현악기 발굴 이후 우리 고대 음악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최대 수확"이라고 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