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를 둘러싸고 50년 넘게 맞서온 여성계와 유림이 12일 ‘상생과 화합’을 내걸고 만났다.

장하진(張夏眞·54) 여성부 장관은 12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을 방문, 최근덕(崔根德·69) 성균관장과 20여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장 장관이 성균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30분. “사진기자들이 꼼짝을 못하게 해 마중을 나가지 못했다”며 최 관장이 반기자, 장 장관은 “이렇게 시간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로 화답했다. 최 관장이 몰려든 취재진을 가리키며 “여성부 장관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다”며 웃자, 장 장관은 “그만큼 호주제를 비롯한 가족문제 자체에 국민들의 관심이 높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장하진 여성부 장관이 12일 오후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을 방문,최근덕 성균관장(왼쪽)과 악수를 하고 있다.

그러나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면담에서 ‘호주제’에 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복실 여성부 차별개선국장은 “어차피 국회에서 여야가 협의한 사항이니 그쪽에서 해결되도록 맡기자”는 선에서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대신 보육정책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최 관장이 “여성들 사회참여가 눈부시게 확대되는 현실에서 육아의 책임이 모두 여성들에게 부여돼 고통을 받고 있으니 장관께서 특별히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하자, 장 장관은 “보육을 여성부의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해나갈 생각”이라고 화답했다.

가족정책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대화가 오갔다. 장 장관이 “금년에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되는데 전통가족의 좋은 면을 새로운 가족정책에 적극 반영하고 싶다”고 말하자 최 관장은 “가족의 화합을 지켜내고 남녀가 상생하는 일이라면 언제든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 관장은 상생의 발걸음을 조금만 천천히 내딛자고 제안했다. “여성운동의 발걸음이 너무 빠르면 가정의 혼란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한 최 관장은 “남녀가 원래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유림과 여성계가 상생 공존하고 화합하는 정책을 펼쳐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장관과의 면담에 앞서 기자들을 만난 최 관장은 “호주제 문제는 국회보다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좌우할 것”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호주제 폐지와 관련, 1957년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개정에 관한 의견서를 국회에 처음 제출한 이태영(작고) 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이 80년대 성균관을 찾아가는 등 몇 차례 면담을 요청했지만 유림측에서 거절해 성사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