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을 중퇴하고 제조업 현장에 일생을 바친 70세의 중소기업 사장이 토종(土種)기술로 부도의 암흑 터널을 뚫었다. 자신의 전 재산은 물론, 아들 집 전셋돈까지 빼내 ‘백의종군’한 그는 요즘 자체 개발한 자동차 엔진 관련 기술이 미국 특허를 받아, 53년 ‘기술 인생’을 꽃피우기 직전이다. ‘제조업은 영원하다’는 말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맹혁재(70) 사장이다.
인천 남동공단 내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삼웅기업의 직원들은 야근 도중 느닷없이 공장에 나타나는 맹 사장과 마주치곤 한다. 새벽 2시, 3시, 5시…. 맹 사장 출근 시간은 종잡을 수가 없다.
출근 후 곧바로 달려가는 곳은 덩치 큰 프레스 기계들 사이 두 평 남짓한 ‘연구실’. 새 엔진 개발의 산실(産室)이다.
선반으로 각종 부품을 깎아 시제품 엔진을 조립한 뒤, 엔진을 돌리고 또 돌리는 작업을 반복하는 일이 그의 주요 일과다. 최근엔 실린더 벽에 개폐가 가능한 구멍을 내고 그 구멍을 점점 좁아지도록 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폭발한 가스가 좁은 구멍을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면서 축을 돌리는 방식으로 회전력을 얻으면, 피스톤의 왕복운동으로 인한 에너지 손실을 최대한 막을 수 있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기존의 피스톤 엔진이나 제트 엔진은 투입되는 에너지의 25%밖에 활용하지 못한다. 그 효율을 2배 이상 높이는 게 그의 목표다.
“새벽이면 어떻고 밤이면 어때요.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얼른 옷 챙겨 입고 나와요. 주변에서 황당한 일 한다고 빈정거려도 포기할 수 없죠.”
그의 엔진 연구는 5년째. 부도가 난 직후부터였다. “부도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더 달려들었지요.”
2000년 9월. 50년 넘게 일군 공장이 쓰러졌다. 삼웅은 당시 변속장치 핵심부품을 생산해 대기업에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회사였다. 1996년 대우자동차 납품을 믿고 생산시설을 두 배로 늘린 것이 화근이 됐다. 외환위기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투자비 50억원의 외화 빚은 금세 2배로 불었다. 반면 새 공장은 대우차의 생산 급감으로 가동조차 못했다. 결국 100억원이 넘는 빚을 진 채 회생 불능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맹 사장은 무너지지 않았다. 서울 문래동 자택과 김포의 땅, 현금 자산 등 15억원에 가까운 전 재산을 내놓으며 이를 악물었다. 1993년 미국 유학 중 돌아와 아버지를 돕던 아들 수호(39·삼웅기업 이사)씨도 살던 집 전셋돈까지 모두 빼내 빚 청산에 보탰다. 지금도 아버지 부부는 큰딸 집, 아들 부부는 처갓집 신세다.
맹 사장이 1970년대 말 혼자 개발해낸 냉간단조기술(열을 가하지 않은 쇠를 프레스 기계로 눌러 금속부품을 생산하는 기술)이 큰 힘이 됐다. 소수의 독일 기업들만이 보유한 첨단 기술로, 서울·천안 등에서 공원생활로 ‘기름밥’을 먹기 시작한 지 21년 만에 맹 사장의 손끝에서 나온 기술이었다. 천안의 한 중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지만, 기술은 현장 경험을 무시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최대 채권자였던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신충태 기업분석부장은 “맹 사장은 재산 빼돌리는 다른 기업주와는 달랐다”며 “사재(私財) 출연에 높은 기술력을 감안, 채권단과 법원이 삼웅을 살리기로 했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시련은 끊이지 않았다. 한때 100명이 넘던 직원이 40명으로 줄었다. 자금난이 극심했던 2003년 초에는 관리 직원들이 “6년간 반납한 상여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내며 회사를 떠났다. 현장 직원들도 들썩거렸다. 아들 수호씨는 “아버지가 현장 사람들을 모아놓고 ‘나도 전 재산 내놓고 딸네 집에서 살면서 일한다. 제발 밥그릇을 깨지는 말자’고 눈물로 하소연해 겨우 위기를 넘겼다”고 했다.
고진감래(苦盡甘來)인가? 지난해부터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GM대우의 자동차 수출이 늘어나면서 공장 매출은 지난해에 2003년 66억원의 두 배 가까운 113억원으로 늘었고, 8000만원의 순이익도 냈다. 자산관리공사도 2003년 말 70억원의 채권을 투자금으로 전환하면서 빚더미에 눌린 숨통을 틔워주었다. 드디어 지난해 4월 길고 긴 워크아웃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11월에는 시험가동 중이던 새 엔진에서 ‘통통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수백 번의 실패 끝에 새 기술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 미국으로부터 2년 전 출원한 엔진 관련 특허가 나왔다는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실용화까지 시간은 더 필요하다. 맹 사장은 “아직 2~3년 더 연구가 필요하지만 죽기 전에는 끝내 놓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채권단에 넘어간 경영권을 찾으려면 35억원을 갚아야 한다.
아들 수호씨는 해외로 뛰며 아버지의 재기를 돕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한 캐나다 업체와의 납품계약은 순풍을 타고 있다. 수호씨는 “자신감을 잃지 않는 아버지가 큰 힘”이라며 “아버지의 기술에 제 마케팅을 결합하면 반드시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거래은행인 하나은행 남동공단 지점 관계자는 “예기치 못한 부도에도 재기하는 부자(父子)의 꿋꿋한 모습에 채권단이 스스로 도와줄 방법을 찾을 정도”라고 말했다.
[▶ [브라보★희망은 나의 힘] ① 삼성 SDS '컴퓨터 도사' 웹마스터 권세종씨]
[▶ [브라보★희망은 나의 힘] ② '돈키호테 3인방' IT 대박 터트린다]
[▶ [브라보★희망은 나의 힘] ③ 7순의 열정…토종기술로 '부도 암흑' 뚫다]
[▶ [브라보★희망은 나의 힘] ④ 잘나가던 은행서 퇴출… 차문현·차인현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