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국회 예산정책처가 출범할 당시 내건 목표는 거창하기만 했다. '행정부를 견제·감시하는 나라살림 지킴이' 역할을 자임했던 것이다. 그런데 출범 10개월여 만에 예산정책처는 조직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위기에 빠졌다. 집권 과반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다.

◆예산정책처 왜 미움받나

예산정책처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작년 3월 출범을 앞두고 석·박사급 등 전문인력을 83명이나 뽑았고, 예산도 97억원을 받았다. 지난해 11월까지 13차례 분석보고서를 냈고, 세미나도 7차례 열었다.

그러나 작년 9월 최광(崔洸) 당시 예산정책처장이 "노무현 정부는 반(反)시장적"이라고 공개 비판하면서 여권과의 불화가 시작됐다. 또 예산정책처가 잇따라 발표한 보고서들이 여권의 심기를 건드렸다. '행정수도 이전 비용이 정부 전망치보다 22조원 많은 67조원에 달한다', '정부의 경제성장률 전망이 과대 추정됐다'는 보고서를 차례로 내놓은 것이다.

◆군기잡기 나선 여당

이같은 예산정책처의 활동에 여권은 즉각 제동을 걸었다. 최광 전 처장을 사실상 강제 면직시켰다. 올해 예산도 1억원이나 깎였다. 국회 사무처나 의원 활동비 등 국회 예산 대부분이 증액된 것과 대조적이다. 예결위 소속 여당 의원들은 예산심의 과정에서 "예산정책처의 인력이 이중으로 계상된 것 아니냐" "경비가 너무 많다"고 몰아붙였다. 한 여당 의원은 "군기 좀 잡아야 한다"고도 했다.

여당은 예산정책처의 활동 성과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정세균 예결위원장은 "보고서가 예산심의에 반영된 경우는 없다"며 "별 도움이 안된다"고 했다. 다른 여당 의원은 "저 기관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예산정책처의 활동도 눈에 띄게 위축됐다. 예산심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작년 11월부터는 단 한편의 보고서도 내지 못했다.

이 조직을 만든 이유는, 예산심사 때 열심히 의원들을 보좌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바빠야 할 때 '일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민감한 내용이 보도되면 여당에서 곧바로 항의가 들어오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물갈이설에 전전긍긍

최근 들어 예산정책처 전문인력 5명이 떠났다. 이미 내부엔 '물갈이'설이 파다하다. 최 전 처장 때 뽑은 사람들은 새 처장이 오면 무사하기 힘들 것이란 얘기다. 한 예산분석관은 "최고의 정책평가기관을 꿈꾸고 왔는데 이건 아니다 싶어 괴롭다"고 했다.

이같은 갈등의 근본원인은 '당정(黨政) 동일체' 구조에 있다는 지적이다. 예산정책처가 정부를 비판하면 여당이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선 독립성을 갖고 정부 정책을 비판하긴 힘들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