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웃음 주며 살기. 쉽지 않은 일이다. 가족은 풍비박산나고 주머니엔 1만원짜리 몇 장뿐이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충북 증평에서 속리산 화양계곡으로 가는 길목에 질마재라는 고개가 있다. 하도 험준해 아무리 작은 짐이라도 죄다 짊어지고 손을 비워야 넘을 수 있다는 고개다. 눈이 쌓이면 웬만한 강원도 고갯길과 마찬가지로 폐쇄된다. 그 질마재 너머 높고 평평한 땅에 된장장수 이정림(52)씨가 살고 있다.
"내가 돈 7만원 가지고 괴산으로 도망왔어. 지금은 부자 됐고." 인천에서 유통업으로 잘나가던 이정림씨 가족이 하루아침에 망했다. 1988년 1월 18일이었다. 그렇게 꽉 쥐고 놓고 싶지 않았던 돈, 그런데 빚보증이 꼬이더니 거지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고 했다. 빚쟁이한테 붙잡혀 있다가 어렵게 탈출해 전국을 떠돌기를 근 10년. 이러구러한 사연 끝에 정림씨는 괴산에 자리를 잡게 됐다. 정림씨는 작은 절에 몸을 의탁하며 살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겪는 가난,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스님한테 소금 만드는 법을 배웠어. 어깨너머로 배우다가 죽염이 몸에 좋다는 말에 제대로 한번 배우기로 했지." 죽염은 소금을 대나무 통에 다져 넣고 세 번 혹은 아홉 번을 굽는다. 그렇게 만든 죽염이 피폐해진 그의 몸을 추슬렀고, 망가졌던 의지도 살려줬다. 질마재 너머 평평한 고랭지에 컨테이너 몇 개를 묶어 집을 지었다. 1997년 가을이었다.
괴산이 어떤 곳인가. 느티나무 숲 속 해발 300m가 넘는 고랭지 채소와 콩과 고추가 전국으로 팔려나가는 곳이다. 그곳에서 정림씨 가족은 콩을 대량으로 사들여 된장을 담갔다. 광명단(光明丹) 바르지 않은 토종 옹기를 사모아 양지바른 곳에 늘어놓고 장을 익혔다. "먹어보니까 맛있고, 죽염이니까 몸에 좋은 된장이었어. 당연히 돈이 되리라 생각했고." 희망으로 웃었고, 행복했었다고 한다. 세 아들과 아내가 합심해 장독 속으로 셀 수 없이 고개 처박고 벌겋게 튼 손을 부비고, 그렇게 어렵사리 대출까지 받아 꽤 많이 장을 담갔는데, 그해 겨울 그 놈의 IMF가 터진 것이다.
힘든 겨울이었다. 빚쟁이들은 팔리지 않는 된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돈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들고 갔다. 외풍 휑휑 도는 컨테이너 집 문짝까지. 가족은 이불 하나에 의지해 서로 부둥켜안고서 그해 겨울을 넘겼다.
농업은 유통이다. 그저 논에 물 대고 밭이랑이나 파는 작업만으로는 돈이 되지 않는 게 농업이다. 그 유통에 빗장이 걸렸으니 가족은 처량했다. 곳간이 텅텅 비어 있는데 나라에서는 태평성대니 비단옷을 입으라고 백성들에게 주문했던, 해괴한 시대의 억울한 처량함이었다. "정말 세상 끝장이라고 생각했어, 그때엔."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IMF 직후 대한민국 대도시에 귀농(歸農) 폭풍이 불어왔다. 그리고 세상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긋지긋한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새 삶을 살려는 의지들이 그에게 몰려와 지혜를 구했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된장 만들기밖에 없잖아. 그런데 사람들이 와서는 바로 그걸 캐묻는 거야. 내가 제일 잘 아는 바로 그거!"
신문과 방송에서는 질마재로 몰려가 수백 번도 넘게 장독대 사진을 찍어갔다. 7만원 들고 떠돌던 사내, 문 달아난 집에서 엄동설한과 싸웠던 가족 사진을 찍어댔다. 사람들은 그에게로 와서 가슴에는 지혜를 담고, 손에는 된장을 들고 돌아갔다. 정림씨, 신바람나게 된장을 전수했고 귀농의 노하우도 전수했다. 된장은 만드는 대로 족족 팔려나갔다.
질마재를 넘어 화양계곡 쪽으로 10여분 가다 보면 왼쪽에 어마어마하게 큰 돌장승이 보인다. 돌장승이 서 있는 잔디밭 한편에는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그 뒤로 황토기와집이 세 채 서 있다. 된장을 사면 식당에서 한 상 그득 절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논두렁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그 뒤로 정림씨 가족을 절망에서 구원해 준 앙증맞은 장독대가 숨어 있다. 크고 작은 옹기들이 햇살에 빛난다. 그 옛날 초라한 풍경은 간 곳 없다. "돈 엄청나게 벌었어. 강연도 엄청 다니고, 집도 이렇게 번듯하게 지었지. 나라에서 '신지식인'이라고 표창도 해주더라. 주말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 밥도 못 먹을 정도야. 신나더라고."
돈을 번 사내 이정림이 택한 일이 바로 '나눔'이었다. 1998년 가을, 빚도 갚고 컨테이너집도 청산할 때에 맞춰 그는 된장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괴산, 청주 지역 양로원, 고아원, 소년소녀 가장들은 정기적으로 정림씨가 전해준 된장을 받아 먹는다. 그게 1년에 5천만원어치다. 그리하기 위하여 정림씨 가족은 새벽 4시면 일어나 된장을 보듬기 시작한다. 호산죽염된장이라 이름 붙은 그의 된장은, 시장에서 쉽게 보는 투박한 플라스틱 통에 담아 판다. 꺼뭇꺼뭇한 된장을 비닐에 싼 뒤 그 플라스틱 통에 넣는다. 공장에서 만드는 양조된장과 거의 비슷한 값이다. "된장, 이거 비싸면 안 되지. 가난한 사람도 먹고 건강하게 살 수 있어야 하는 거야."
궁핍할 적에 그가 아는 어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선사람은 연탄과 된장과 쌀만 있으면 죽지 않는다." 정림씨가 말했다. "장독에서 된장 한 덩이 퍼봤댔자 표시도 안 나. 그런데 그거 한 덩이 있으면 노인들은 반년을 살 수가 있는 거야. 줘서 기분 좋고, 받아서 기분 좋은데 이걸 왜 안 해?"
그래, 해봤댔자 된장 한 덩이다. 하지만 된장 파는 장사치에게는 절대로 적지 않은 나눔이다. "없어도 봤고 있어도 봤으니 이제 더 걱정 안 해. 더 울 일이 있겠나. 서로 돕고 사는 게 재미 아니겠어?" 식당 화장실에는 정림씨 아들이 붙여놓은 글이 있다. "많이 웃는 하루 되십시오." 장독마다 장이 익는다. 웃음으로 담근 장이.
된장, 어디서 살 수 있나요
이정림씨가 운영하는 호산죽염된장은 충북 괴산군 청안면에 있다. 증평에서 웅장한 질마재를 넘으면 나온다. 인터넷은 www.ihosan.com, 전화번호는 (043)832-1388. 된장, 청국장, 고추장, 기타 등등 장류를 판다. 된장을 사면 산채정식이 공짜. 안 사면 5000원이다. 3000개가 넘는 장독들도 구경거리고, 속리산 화양계곡까지 놀러가면 금상첨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