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영문학자인 이재호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저서 '영한사전 비판'에서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 영한(英韓) 사전들이 부실투성이라고 비판했다. 중요한 단어들이 표제어에서 빠졌거나, 뜻풀이에 한자말이 아닌 순수한 우리말 설명이 빠진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king에 '왕, 군주'는 있어도 '임금'은 없고, teacher에는 '선생, 교사'만 있지 '스승'은 없다. enough에 '충분한, 풍족한'은 있어도 '넉넉한'은 없고, about에는 '약(約), 대략'만 있지 '어림잡아'는 없다. 요즘 신문에도 자주 나오는 FTA(자유무역협정)나 libero(배구의 수비전문 선수) 등을 아예 싣지 않은 사전들이 대부분이다.

매년 1200만명이 5조원의 사교육비를 들여 가며 영어학습에 매달리고 있다는 나라의 빈곤한 속사정이 이렇다. 이런 문제의 상당 부분이 일본에서 발행된 영일(英日)사전의 뜻풀이를 그대로 베낀 때문이라니 이러고도 우리가 광복 60년과 문화적 독립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인지 부끄럽다.

사전은 한 나라 문화의 높이와 인식의 깊이를 재는 척도이다. 한말 언더우드 선교사가 '영한자전'을 처음 낸 지 올해로 115년째다. 아직도 우리 손으로 만든 제대로 된 영한사전 한 권 없다는 것은 우리가 영어문화권을 볼 수 있는 독자적인 눈을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사전 편찬에는 막대한 비용과 인력, 시간이 필요하다. 선진 문화국가라면 비단 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뿐 아니라 각 나라 각 분야별로 수십종의 사전들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사전 편찬에 돈을 들인다는 것은 문화의 벽돌을 찍어내는 것과 한가지다. 그 벽돌 한 장 한 장이 쌓여 문화국가의 기둥이 되고 천장이 되는 것이다. 헛된 정치적 공약으로 날아가는 돈을 줄이고 1년에 50억~100억원씩 10년만 사전 편찬에 투자한다면 우리의 문화인프라는 말할 수 없이 튼튼해진다.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은 이런 요긴한 대목을 놓치지 않는 넓은 안목이다. 그런 한편 국민들 스스로도 사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사명감을 갖고 일생을 사전 편찬에 바치는 인재들이 각 분야에서 여럿 나타나고 그들이 존경받는 풍토가 될 때 우리 사회는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