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월 하시모토 류타로 당시 통산상이 일본에서는 드물게 50대의 젊은 나이에 총리로 취임했다. '독불장군'이라는 별명답게 통산상 재직시 미국의 자동차 시장 개방 압력에 단호하게 대처, 미국에 '노(No)!' 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국민들의 인기가 급상승했기 때문이었다. 1992년 이후 4년 연속 1% 안팎의 낮은 경제성장으로 자존심이 상한 일본 국민들에게 하시모토 총리는 훌륭한 선택처럼 보였다.
하시모토는 취임하자마자 개혁을 국정과제로 내걸고 경제·행정·교육 등에 걸쳐 수많은 과제들을 내놓았다. 그러나 의욕만 앞섰지 제대로 되는 게 없다는 평가를 면치 못했다. 당시 미국의 언론들까지 "행동은 없고 구호만 많다(NATO·No Actions, Talks Only)"라고 비판할 정도였다.
게다가 과감하게 추진한다고 한 세금 인상은 실패작이었다. 1995년 하반기부터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던 경기회복을 본격적인 것으로 오판, 하시모토는 재정적자를 줄인다면서 96년 4월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인상하고 특별감세제도를 폐지했다.
이후 소비와 투자가 다시 얼어붙자 부랴부랴 16조엔의 경기부양책에다 2조~4조엔의 소득세 영구 감세 등을 내놓았다. 하지만 너무 늦는 바람에 일본 경제는 전후 최장기 불황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1996년 5.0%(이후 3.5%로 수정)에 달했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97년에는 1.8%로 급락했고, 98년에는 아시아 외환위기까지 겹쳐 성장률이 -1.2%로 추락했다.
이쯤 되면 국민들의 심판이 없을 수가 없다. 1998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하시모토 총리는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총리는 실정(失政)으로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고통은 국민들의 몫이다. 이때의 불황을 일본 국민들은 '하시모토 불황'이라고 부른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하시모토 총리와 비슷하다. 미국에 대해 '노!'라고 할 수 있는 50대의 젊은 대통령으로 온 국민의 기대 속에 출범했다. 취임 후 개혁을 표방하면서 수많은 구호와 과제를 양산해 냈다. 취임 당시 13개였던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22개로 늘어나면서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분야별로 리더십은 없고 갈등만 양산해 내면서 'NATO 공화국'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후 확실하게 밀어붙인 정책은 부동산 정책. 재임 중 집값은 반드시 잡겠다면서 안정 대책을 연이어 내놓았다. 덕분에 집값이 작년에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거래가 끊기다시피 하면서 부동산 시장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그간 경제는 뒷전이거나 낙관론으로 일관하다가 최근에야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한국판 뉴딜, 벤처 활성화, 예산 조기집행 등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고, 부동산 정책도 일부 완화하고 있다. 내용은 어쨌거나 일단 방향은 맞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 같은 대책의 속도와 강도 조절 및 투자 분위기의 조성이다. 전 세계 경제의 둔화와 원화가치 상승 등 전반적인 흐름으로 볼 때 올해 국내 경기를 정상으로 돌려놓지 못하면 우리 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이 앞으로 이어질 불황을 '노무현 불황'이라 부르지 않을까. 더 걱정스러운 것은 장기불황의 고통은 국민들의 차지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