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이가 철학자 디오게네스에게 물었다. “어떤 짐승에게 물리는 것이 가장 위험한가요?” 디오게네스가 대답했다. “밀고자의 이빨이 가장 치명적이고, 아첨꾼의 이빨이 가장 무섭다네.” 그러나 그리스 이래 아첨의 역사는 유구하다. 에머슨은 “우리가 아첨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의 호감을 사야할 만큼 남들이 우리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1000㎏의 성실보다는 1온스의 아부가 값진 가치를 지닌다.” 건설교통부 직장협의회가 새해 홈페이지에 이런 서양 속담을 담은 ‘승진 처세 비결’을 띄웠다. 글을 쓴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정책연구소장은 “합법적인 방법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진하는 것이 장땡”이라고 주장했다. “일 많다, 어렵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녀라.” “화장실에 가더라도 반드시 두꺼운 서류철이나 결재판을 들고 다녀라.”
▶처음엔 공무원들의 승진 지상주의에 대한 풍자나 조롱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읽다보니 그게 아니다. ‘다면 평가에 필요한 선린적 인간관계 형성’ ‘기관장의 주간행사표 관심있게 보기’ ‘자기가 아는 무슨 위원이 참석하는 위원회가 열린다면 기관장에게 (승진) 귀띔이라도 하도록 하기’…. 새해를 맞아 승진을 꿈꾸는 공무원들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처세의 조언들이 가득하다.
▶원래 처세(處世)는 “남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일”이다. ‘부자되는 법’ ‘절대로 안 잘리는 월급쟁이 되는 법’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법’ ‘합법적으로 돈 떼어먹는 법’ ‘나이들어 호강하는 법’…. 각종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제목의 처세 요령 책들이 서점을 덮은 지가 벌써 오래다. 이제 드디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진하고 보자는 처세론이 공무원들의 인터넷에 버젓이 등장한 것이다.
▶세상을 사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어떤 이들은 세상을 구하고 경영하는 데 관심이 있다(經世 救世 濟世).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싫어하고 걱정하고 기피하여 숨기도 한다(厭世 憂世 避世 遁世). 또 어떤 이들은 자기 세상을 만나 환희 속에 살거나(逢世), 세상을 뛰어넘어 살기도 한다(超世 出世). 혹 좋은 시절 만나면 시선(詩仙) 이백(李白)처럼 “세상 사는 게 꿈과 같으니 술잔이나 기울이리라(處世若夢當傾樽杯)”라며 허허롭게 사는 방법도 있다. 이 모든 게 각자의 인생철학에 따른 것이다. 정초부터 세상에 아첨하며 살아야 한다(阿世)는 얘기를 듣는 심정은 씁쓸하다. 어디가서 귀나 씻어야겠다.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