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일제 치하에서 사람들은 숨죽이며 저 멀리 중국에 있다는 '우리 정부'를 귀엣말로 전했다. 그렇게 가슴뛰게 하는 임시정부의 존재였지만, 정작 임정의 인식은 광복 당시부터 건국 후, 그리고 최근 '과거사 다시 보기'에 이르는 동안 숱한 굴곡을 겪어왔다.

김구 주석이 이끄는 임정은 일본의 8·15 항복 선언이 있고도 100일이 지나서야 조국 땅을 밟았다.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귀국했지만,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참가하지 않음으로써 정국의 주도권을 잃어 갔고, 6·25 전쟁을 전후하여 김구와 김규식을 잇달아 잃음으로써 정치세력으로서 종말을 고했다. 이후 임정은 남북한 모두에서 냉대를 받게 됐다.

이승만 정권은 광복군 출신의 이범석을 국무총리에 기용하는 등 필요에 따라 임정을 정치적으로 활용했지만 김구 중심의 임정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었다. 박정희 정권 역시 초기에는 임정에 별다른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따라서 1960년대까지 임정에 대한 연구조차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달라진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였다. 남북한의 체제 경쟁에서 우위에 서게 된 남한 정부는 임정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사 연구를 통해 정통성 경쟁에서도 유리한 입장에 서려고 했다. 이에 따라 잇달아 방대한 분량의 독립운동사와 자료집이 발간되었고, 연구 성과도 본격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1980년대에 '임정 법통론(法統論)'이 제기됐고, 1987년 6·29 선언 이후 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한 제9차 개헌에서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학계와 사회 일각에서는 북한의 영향을 받아 임시정부를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의 망명 집단'으로 깎아내리는 분위기가 존재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 임정만이 독립운동의 배타적 정통성을 지니고 있다거나, 거꾸로 임정의 의의를 인정하지 않는 양 극단을 벗어나, 임정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의 여러 흐름을 통합적으로 보려는 움직임이 대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