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가 시장경제로 바뀌는 것을 지도자 마음먹기쯤의 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인민이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는 것을 보게 되고 사회주의 체제로서는 경제 회생의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게 되면, 최고권력자는 시장경제로의 체제 전환을 시도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했던 나라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시장경제로의 이행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회주의가 혁명으로 건설된 것처럼 자본주의로의 이행도 사회주의의 최고권력자에게는 일종의 혁명을 감행하는 만큼의 위험부담을 요구한다.
사회주의 경제에서 자본주의 요소의 대폭 도입을 골자로 하는 주요한 경제개혁은 구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도 수차례 있었다. 소련에서는 1920년대 초의 신경제정책, 1965년의 코시긴 경제개혁, 그리고 1980년대 후반의 페레스트로이카 등이 그 예이다. 그리고 헝가리에서 시도한 시장사회주의적 경제개혁도 사회주의권의 대표적인 경제개혁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경제개혁 조치에는 다음의 두 가지 중요한 사건 중 적어도 하나의 사건이 전제되어 있었다. 첫째는 최고권력자가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새로이 권력을 쥔 자는 기존 권력자와 차별화를 추구함으로써 정당성을 얻으려 했고, 그 결과 과감한 개혁을 선택할 수 있었다. 둘째는 민중의 항거가 일어난 경우이다. 1920년대 초의 신경제정책이 그런 경우인데 농민들의 봉기에다 해군들이 거기에 가담하게 됨으로써 레닌은 자신의 사회주의 발전 전략을 일단 수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북한은 현재 두 전제조건 중 어느 것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북한이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획기적인 경제개혁을 시도할 가능성은 낮다. 체제 전환이 성공하려면 국유산업의 사유화와 더불어 가격과 무역의 자유화가 필수적인데 이 사유화·자유화라는 것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최고권력자에게는 독이요, 기존 엘리트들을 '찬밥 신세'로 전락시키는 지름길임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위에 언급한 모든 경제개혁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로의 체제 전환의 핵심인 사유화·자유화에 이르기 한참 전에 페레스트로이카는 종말을 고하고 소련 사회주의체제도 붕괴하고 말았다.
반면 1970년대 말 자본주의로의 개혁을 시도한 중국은 최고권력자가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 때 피해를 본 관료, 엘리트 군인, 지식인들이 개혁을 열망하여 덩샤오핑(鄧小平) 노선을 지지하였다. 그리고 사유화·자유화를 감행하였다. 즉 중국은 체제전환의 정치적 조건이 올바른 노선 및 전략과 결합되었던 것이다.
북한에 1970년대 말의 중국과 같은 정치·사회적 변화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북한의 '변화'는 우리의 기대에 불과하다. 북한이 완전한 체제 전환이 아닌,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자본주의적 요소만 도입하는 식의 반쯤 익은 개혁을 시도한다면 우리는 북한의 변화를 오히려 붕괴 가속화의 신호탄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현재까지 북한의 개혁은 극단적인 사회주의체제에서 좀 덜 극단적인 사회주의체제로의 변화에 불과하다. 이를 '의미 있는' 변화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의 희망 어린 해석이다. 여러 사회주의체제가 그런 '의미 있는' 변화를 시도하다가 붕괴하였다는 역사적 관찰은 우리에게는 희망의 노래를 부를 여유조차 없음을 의미한다. 북한도 위태하지만 그런 노래를 부르는 우리도 걱정스럽다.
(김병연·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