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한 해였다. 실직과 파산이 줄을 이어 서민들 고통이 컸다. 그 와중에 각계각층의 이념대립은 극에 달했다. 대통령 탄핵과 수도이전을 둘러싼 지역·계층·이념 대립은 결국 헌법재판소 결정이 난 뒤에야 다소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상처와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고위 공직자, 서민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는 ‘자살 신드롬’이 번지기도 했으며, 김선일씨 참수, 엽기적 연쇄살인, 대규모 수능부정 사건 등이 국민을 놀라게 했다. 사건의 현장을 뛰고 있는 사회부 기자들이 모여 올해를 되돌아봤다.
―얼마 전 만난 한 대기업 간부가 "올해는 연례행사처럼 오던 홍수가 없어 수재민 돕기 성금을 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연말 이웃돕기 성금을 더 많이 내기로 했다"고 말하더라. 올해는 대규모 천재지변과 대형 참사 없이 운 좋게 넘어갔다. 하지만 인재(人災)형 사건 사고는 많았다.
―올해 상반기는 '한강다리 자살 신드롬'으로 시끄러웠다. 한강에서 투신자살하는 고위 공직자와 유명 인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3월 11일 대우건설 남상국 전 사장의 한남대교 투신이 시작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씨에게 인사청탁을 한 것으로 알려진 남 전 사장에 대해 노 대통령이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라는 내용의 연설을 한 직후였다.
―시신을 발견하는 데만 열흘 넘게 걸려 "남씨가 헤엄쳐 한강을 건너가 살아있다" "시신이 이미 서해 바다로 흘러갔다"는 등 온갖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3월 29일엔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재직시절 인사·납품 비리 연루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던 박태영 전남 지사가, 6월 4일에는 뇌물 수수혐의로 검찰 내사를 받던 이준원 경기 파주시장이 반포대교에서 몸을 던져 숨졌다.
―자살사건이 잇따르자 가장 곤혹스러웠던 곳은 한남·반포대교 등 6개 다리를 관내에 두고 있는 용산경찰서였다. 경찰서 간부·직원 할 것 없이 "왜들 한강에 와 빠져죽는지 모르겠다" "굿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푸념했다. 투신사건 대부분이 형사계 4개반 중 1반이 당직인 날에 터져 동료 경찰관들조차 1반 직원들을 동정할 정도였다. 1반 직원들은 당직 전날이 되면 "부정 탈 일은 하지 말자"며 술집 출입을 삼가기도 했다.
―한강다리 투신은 아니었지만, 올해 첫 고위직 인물 자살사건의 주인공은 안상영 부산 시장이었다.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된 안 시장은 부산구치소에서 러닝 셔츠를 찢어 만든 끈에 목을 맸다.
―자살한 고위 공직자 대부분은 검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우리 취재팀이 검찰의 조사 과정에 가혹행위가 있었는지를 집중취재하기도 했다. 이들이 자살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억울함의 표현'인 것 같다. 뇌물 관련 사건의 경우 연루자를 보호하고 사건 확산을 막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높다.
―남상국 전 사장 자살사건은 파장이 엄청났다.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탄핵안 가결은 그 이전의 굵직한 사건들을 모두 덮어버렸다. 작년 8월 시작된 검찰의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가 올해 1~2월까지 이어지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등 정치인들 처리 문제가 큰 사건으로 떠오르는 기미가 보였는데, 탄핵안이 통과되면서 금세 가라앉았다.
―탄핵안 가결 이후엔 주말마다 광화문 일대에서 대규모 '탄핵 무효' 촛불집회가 열렸다. 올해 내내 광화문 일대는 보수와 진보 단체들의 세(勢) 대결이 끊이지 않았다. 세대와 이념을 불문하고 모두 거리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외친 특이한 해였다.
―법조계에선 6~7월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안대희 전 대검 중수부장이 무대에서 물러난 게 화제였다. 일부 검사는 지금도 강금실 전 장관 시절을 회고하며 "그때가 좋았다"는 말을 한다. 강 전 장관이 검사들의 영역을 확실히 지켜줬기 때문일 것이다.
―안대희 전 부장은 '권력'이 '칼'을 주자 피아 구분 없이 문제 있는 사람은 다 쳐내는 전방위 수사를 펼쳐 내내 주목 받았다. 이 때문에 나중엔 '권력' 쪽에서도 그를 경원하기에 이르렀다는 관측도 있다.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 위헌' 결정 이후에는 충청 주민들의 반발 집회가 줄을 이었다. 충청 주민들은 "우리가 먼저 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덜컥 행정수도 충청도 이전을 결정하더니, 얼마 안 있어 또 자기네 멋대로 이를 취소했다"며 특히 정치권에 크게 분노했다. 복잡한 정책 논리보다 "대체 언제까지 우리 충청도 사람들을 우습게 볼 거냐"는 정서가 충청주민 사이에 매우 광범위하게 깔려 있음을 실감했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 없는 사안으로 싸우는 동안 민생경제는 계속 나빠졌다. 식당 운영자들이 솥단지를 들고와 집어던지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류독감 파동, 불량 만두소 파동 등 '먹거리 파동'이 연속으로 터져,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마음고생이 아주 컸다.
―7월에는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이 국민을 놀라게 했다. 사회에 대한 불만을 불특정 여성들에게 잔인한 방법으로 분풀이했다. 많은 피해자들을 토막 내다 보니 숙달이 돼 나중에는 토막 내는 시간이 아주 짧아졌다는 게 수사경찰의 귀띔이었다. 장기(臟器)까지 꺼내 먹었다는 말을 기자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해 주위를 경악시켰다.
―유영철은 유치장에 들어간 뒤에도 화제를 남겼다. 유치장 옆방 사람이 떠들자 유영철이 "조용히 해. 죽여버린다"라고 한마디 했더니, 유치장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고 한다. 당시 경찰들은 유영철을 '유치장 군기반장'이라 했다.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유영철 최면조사를 의뢰했지만 실패했다. 유영철과 함께 국과수에 다녀온 경찰관은 "보통 놈이 아니야. 최면도 잘 안 걸려"라고 하더라.
―이라크에서 김선일씨가 참수된 사건은 국민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김선일씨가 근무하던 회사의 김천호 사장이 귀국했을 때 각 사 기자들이 공항에 바글바글했지만 김 사장이 경호원들을 동원해 빠져 나갔다. 타사 기자들은 다 포기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가 경북 칠곡 휴게소에서 잠시 쉴 것이란 사실을 파악하고 심야 고속도로 추격전을 벌여 결국 인터뷰에 성공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김선일 참수사건에도 불구하고 자이툰 부대는 8월 이라크로 파병됐고, 그들의 씩씩한 모습에 국민들이 안심하고 있다. 국회의 이라크 파병동의안 처리가 시간을 끌고, 이후 파병지 결정이 지지부진할 때만 해도 군 장교들의 불만이 높았었다. 환송행사도 없이 몰래 출국했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최근 노 대통령이 자이툰 부대를 '깜짝 방문'하자 군의 호응은 엄청났다. 한 장교는 "노 대통령이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군 장교의 대통령에 대한 평가로는 좀 불경스러운 것 같지만 대통령에 대한 군의 평가가 그 이전엔 아주 낮았음을 드러내는 말인 듯하다.
―하반기 들어서는 교육 관련 사건들이 줄이어 터졌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능 부정 사건이 대표적이다. 수능 부정은 전국 각지에서 발생했지만, 광주에서 처음 터졌고 계속된 추가 수사에서도 광주 수험생들이 많이 적발됐다. 이 사건으로 광주 사람들이 많이 가슴 아파했다. 이번 사건으로 광주가 불명예스러워 했지만, 부정행위 사건을 처음 제보해 세상에 알린 것도 광주의 학생이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밀양의 집단 성폭행 사건도 청소년 탈선의 극치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두 사건은 학교와 가정의 윤리교육에 큰 구멍이 뚫렸음을 보여준다.
―올해 처음 선택형으로 치러진 수능 시험에서 일부 선택과목 난이도에 격차가 있어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사과를 하기도 했다. 교육당국이 사교육을 없애겠다는 목적에서 수능 일부 과목을 너무 쉽게 출제한 게 문제였다.
―올해도 '앞으로 우리 자식들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물음에 속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 채 막을 내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