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방 사람 놀리는 것이요. 차라리 날 죽여뿌소. 다 키운 딸년 애비가 능력 없어서 시집 못 보내는 심정을 총각이 알겄소. 시방 그 딸년 목 졸라 죽여분다고 생각혀봐. 기분이 어쩌겄소?”
함부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배추 가격이 폭락해 수확을 포기한 김씨 노인(65)은 철퍼덕 밭두덩에 쭈그리고 앉더니 담배를 입에 문다. 김씨는 담배 연기를 입안에서 살살 굴리며 배춧잎들이 시체처럼 널부러져 있는 자신의 밭을 바라본다. “배운 게 도적질이라고 할 줄 아는 것이 이것밖에 없응께”라며 김씨는 자기 자신을 원망한다. 농민은 지난 수개월 간 배추밭에서 부지런히 일하며 땀을 흘리고, 이젠 배추밭에 주저앉은 채 눈물을 흘린다.
지난 12월 10일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 겨울 하늘이 높고 푸르다. 멀리서 바라보니 내리쬐는 햇살 밑으로 배추밭이 파릇파릇 살아있다. 가까이에서 보니 쩍쩍 갈라진 배추들이 일부는 이미 썩은 채 그대로 방치돼 있다. 바로 옆 무밭은 아예 쑥대밭.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에 무는 ‘토막 살해’ 당한 듯 여기 저기 흩어져 나뒹군다. 스모그 효과만 있으면 전쟁이 막 지나고 간 자리나 다름없다. 시골 인심이 좋은 듯, 동네 사람들 아무나 가져다가 김장하라고 초토화된 무밭 구석 10평 정도를 트랙터로 밀지않고 그대로 남겨뒀다. 트랙터로 밭을 갈아엎는 일을 이 곳에서 ‘로타리 친다’고 한다. 김씨는 담배 연기를 입 안에서 살살 굴리며 세상 만사 다 귀찮은 사람 모양 느린 말투로 돈 얘기를 꺼낸다.
“트랙터 없는 사람들은 로타리도 돈 주고 쳐야해. 한 평에 50원이여. 1만평 로타리 쳤응께 얼마여? 그것도 20만원이고먼. 죽어라 농사 지었더니 쓰레기라는데 어쩌겠소. 팔아도 돈 주면서 팔아야 할 형편이오.”
배추·무 가격이 ‘똥값’이다. 작년 이맘 때 한 포기 2000~3000원 하던 배추가 500~1000원.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는 보통 한 트럭 6톤이 기본 거래 단위인데 잘 될 때는 한 트럭에 200만~500만원까지도 하던 게 지금 70만~80만원이다. 작업비 27만여원, 운송료 30만~40만여원, 하역비 4만9000여원, 쓰레기 유발금 3만원 등을 계산하면 한 트럭에 최소 100만원은 받아야 본전. 농민들은 20만원 이상 손해보며 팔거나 아예 밭을 갈아엎는다. 종자값, 비료값, 배추값은 커녕 인건비도 못 건진다. 박리다매(薄利多賣)하면 되지 밑져야 본전 아니겠냐고 함부로 얘기했다가는 뺨 맞을 분위기다. 농협 지휘 아래 ‘계약 재배’를 한 농가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 본전까지 찾은 것은 아니지만 크게 손해 안 보고 하라는 대로 밭을 폐기했다. 나머지 농민들은 아예 수확을 포기했다.
재배면적 줄었지만 생산량은 늘어
트랙터는 배추밭·무밭만 쓸어버린 것이 아니다. 장롱 속 깊이 숨어 있던 농민들의 적금 통장까지 깡그리 쓸어버렸다. 시장논리 앞에서는 배추 잘 팔아 막걸리라도 한 사발 마시고 싶었던 시골 어르신들의 순수한 속내도 속수무책. 젊을 때 힘깨나 썼을 것 같은 탄탄한 덩치의 유병문(67) 이장은 “제발 좀 도와주소”라고 통사정이다.
“차라리 태풍 와서 다 쓸어가버렸으면 좋겄소. 그럼 보상이라도 받을 것 아니요. 이것이 뭔 일이요. 땀 흘려 농사 잘 지어놨더니 아예 가져가지도 않겠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이것은 인재(人災)요, 인재. 자연재해면 보상이라도 받는데 인재는 보상이 없소. 좀 도와주소. 서울 아주머니들 제발 김장 한 포기씩만 더 해주소.”
배추·무 가격이 이렇게 장기간 폭락한 적은 전에 없었다고 한다. 추석 이후 떨어진 배추·무 가격은 김장철이 다 끝나가도록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가지. 고수면사무소 양봉용 주사가 책상을 탁탁 치며 설명한다.
“중국 김치 겁나게 들어왔고요. 김치 냉장고도 생기고 해서 요즘은 사람들이 김장도 많이 안 담그고요. 젊은 사람들은 아예 겁나게 큰 마트에서 김치 다 사서 먹어버리고요. 올해는 전국적으로 배추가 겁나게 풍작이었어요.”
전라남도의 배추 재배면적은 지난해에 비해 7% 줄었지만 풍작으로 생산량은 10% 늘어 공급이 과잉됐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올 10월까지 수입된 중국산 김치는 5만7000여톤, 지난 해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중국 현지의 한국 기업이 만드는 중국 김치 가격은 한국 김치 가격의 3분의 1. 가락시장 관계자는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쓰이는 김치의 90% 이상이 중국 김치라고 한다. 한국은 이제 김치 수입국이다.
“왜 배추·무 농사를 계속 지으십니까? 배추 수요는 줄고 중국산 수입은 늘지 않았습니까?”
“총각, 도시 사람이라 잘 모르는 것 같소. 우리 마을에 농협에 빚 안 진 사람은 하나도 없소. 농협 빚 갚으려면 콩, 고추 농사 지어서는 안 돼요. 배추·무가 단가가 세서 목돈이 들어온단 말이요. 그러니 수박밭 갈아엎고 배추 심는 것이오. 빚 갚으려다 빚이 또 늘었소.”
“그래도 몇 년에 한 번은 수입이 괜찮지 않습니까? 매년 가격이 이렇지는 않지요?”
“총각, 촌에서 안 살아서 잘 모르는 것 같소. 매년 2000만원씩 투자할 여력이 있는 농가가 얼마나 있을 것 같소. 돈이 많으면 한 해쯤 손해봐도 내년은 낫겄지 하고 다음 해 다시 농사지을 수 있소. 여기는 1000만원 손해보면 가계가 휘청거리는 동네요.”
“딸 넷 낳고 어머니가 집사람 꼬시는 바람에 늦둥이로 아들을 보았다”며 씨익 웃는 이규봉(51)씨는 이 동네 ‘젊은이’. 이씨는 할 말이 많아 폭발할 듯 입을 움찔거리다가도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 끙끙댄다. 대신 이씨는 자신의 차를 몰고 다니며 폐허가 된 들판을 하나 하나 보여준다. “내가 말해 뭐하겠소. 눈으로 보소.” 신경질적으로 꾹꾹 가속기 페달을 밟으며 그가 계속 말한다.
“상식이란 게 있지 않소. 상식.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면 그 결과가 좋을 것이고 그 결과가 좋으면 돈도 좀 될 것이다, 이런 것이 상식 아니겠소. 나 열심히 일했소. 새끼처럼 밥 주고 만져 주며 곱게 키웠소. 아, 작황이 좋으니 기분은 얼마나 좋겠소. 그런데 아무도 안 사가고 있소. 농사 지을 맛이 딱 떨어져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중학교 다니는 막둥이 녀석 어찌 키울까 걱정이 태산이요. 애비 직업이 시원찮으면 돈이라도 많이 벌어줘야 하지 않겠소. 이러니 누가 농촌에 남아서 땅을 지키겠소. 동네에 애기 울음 소리 사라진 지 오래요.”
농민들 억장만 무너지는 게 아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포전매입하는 전문산지유통인들, 일명 ‘밭떼기 수집상’들은 부도 직전이다. 수집상들은 배추·무가 싹이 터서 이파리가 한 뼘 정도 될 때쯤 농민들로부터 평당 얼마씩 밭을 계약한다. 크게는 20만평 이상 밭떼기로 계약하는 대상(大商)도 전국적으로 5~6명 있다고 한다.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관계자는 전국에 유통되는 배추·무의 70% 이상이 수집상들의 ‘작품’이라고 귀띔한다. 3~4개월 후 출하 시기에 가격이 잘 맞으면 대박이 터지기도 하는데, 가격이 도저히 나오지 않으면 계약금을 포기하고 잔금을 치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농민도 죽고 수집상도 죽는 것. 지금 상황이 그렇다.
수집상 김씨는 올해 고창군 대산면에서 배추 8500평, 무 1만6000평을 한 평에 3000여원씩 주고 밭떼기로 샀다. 농민들은 출하 시점에 가격이 더 나으면 돈을 더 벌 수도 있지만 자금 부담도 있고, 손이 많이 드는 수확기에 작업 인력도 운영해야 하고, 조금 손해보더라도 안전한 길이 낫다고 판단, 울며 겨자먹기로 밭을 팔았다. 올해는 농민의 판단이 백번 맞았다. 1평당 3000원 하던 게 지금은 500원 주고도 안 사간다.
“얼마나 손해보셨습니까?”
“말할 기분 아니요.”
수집상은 말을 잃었다. 모 수집상은 충청남도 온양에서만 10만평, 전국적으로 30만평의 배추·무를 밭떼기로 샀다. 총 10억원 이상 투자했다고 한다. 올해 수억원을 손해봤다. 전화기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올해는 손 댄 사람 다 망했어요”
“1평에 3000원씩만 해도 10만평이면 3억원입니다. 또 빚이 늘었습니다. 올해는 손 댄 사람(수집상)은 다 망했어요. 마음도 심란하고 해서 밖에 나가지도 않고 집에만 앉아 있습니다. 이건 도박입니다, 도박. 배추·무 물동량을 내 딴에는 알아본다고 알아봐서 김장철에 내놓으려고 계산해서 산 건데. 이제 쪽박 차게 생겼어요. 하긴 나랏님도 제대로 못 계산하는 것을 내가 하려고 했으니….”
‘도박이다’, 유통량을 맞추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는 매년 품목별로 유통량을 조사해 발표한다. 유통량을 예측해서 도박하지 않아도 딱 그만큼 생산하고 유통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농수산물유통공사 유통정보부 민배근 대리가 자신도 답답하다는 듯 설명한다.
“이론적으로야 유통량을 예측해서 농민들에게 할당하면 되는 것이지만 민주 국가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돈이 좀 된다 싶으면 농민들이 너도 나도 배추를 심는 바람에 가격이 떨어지고, 안 된다 싶으면 농사를 안 지어서 물량이 부족하고 가격이 오릅니다. 채소 수급 안정사업 중 하나로 계약 재배를 하긴 하지만, 전체 면적에서 계약 재배가 차지하는 비율이 적기 때문에 시장 가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물동량이 안 됩니다. 그리고 전체 재배면적을 제대로 조사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배추·무는 단기간에 재배되는 상품이라 돈이 된다고 하면 1년에 3~4번씩 어디서든 심습니다. 그걸 어떻게 다 조사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12월 12일 오후 8시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장작화롯불 주위에 화물트럭 기사들 대여섯이 둘러앉아 밤 11시 시작되는 배추 경매를 기다리고 있다. 배추·무 가격이 폭락하니 배달하는 화물트럭 기사들도 울상이다. 각 지역 화물알선소에서 하염없이 기다려도 물량 자체가 없으니 순번이 3~4일에야 한 번 돌아올까 말까. 한 달에 10건 배달하기도 힘들다고 하는데 운송료도 내렸다. 전국 각지에서 서울 가락시장으로 배추·무를 싣고 오는 이들은 오늘 밤에도 화물차에서 고꾸라져 새우잠을 잔다. 여관비도 안 나오는 마당에 추운 곳을 가릴 형편이 아니라고 한다.
청주가 고향이라는 김 기사는 27년째 화물 트럭을 운전하고 있다. 오늘은 전남 무안에서 배추를 싣고 왔다. 평소 같으면 운송료가 40만원 이상은 할 텐데 이번에는 30만원 남짓. 기름값 13만원, 고속도로 이용료 3만원, 화물알선료 2만원, 부대경비까지 빼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는다. 배추를 싣고 올라와도 2~3일간 경매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기사들도 “돌아버리겠다”고 한다. 쓰레기로 처분하려 해도 돈이 든다. 아예 다시 배추를 산지로 싣고 돌아가 밭에 버리는 경우도 있다. 김씨가 말한다.
“큰 딸이 대학생인데 미치겠어요. 좀 있으면 또 등록금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겨울에 추워도 여관 못 가고 차에서 자는 게 다 이유가 있지요. 다들 힘들다는데 저는 죽겠습니다.”
“배추 내려놓고 오늘 밤 내려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허허허 경매될 때까지 배추는 못 내려놓습니다. 누가 살지 어떻게 압니까. 경매될 때까지 최소 이틀은 걸려요.”
상품 품질이 좋으면 가격은 많이 못 받더라도 올라온 날 바로 경매가 되기도 한다. 그것도 이렇게 물량이 많은 경우에는 경매가 쉽지 않다. 품질마저 안 좋으면 3~4일씩 경매가 안 된 채 트럭에서 썩다가 결국 폐기처분된다. 가락시장 대아청과 배성환 과장은 경매사 경력 17년의 유통 전문가, 올 여름에는 하루 평균 1억여원의 상품을 처리했지만 지금은 하루 5000만원 남짓 처리한다.
수집상·중간상들도 ‘죽을 맛’
“가락시장에서 3~4일씩 경매가 안 되는 상품들은 99% 다른 곳에서도 처분이 안 되는 상품입니다. 배추는 3~4일 안에 소비자 손에 들어가야 상품 가치가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겉잎부터 굳거나 썩어버리니까 맛이 없지요.”
“손해보는 거 알면서도 배추·무 트럭이 계속 올라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방 농민들은 혹시나 본전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순진한 마음에 올려보내는 것입니다. 수집상들은 더 절박한 이유 때문입니다. 수집상들은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배추 수확에 일손이 많이 들어가니까 한 조에 7명 가량 되는 작업조를 1~2개 정도 운영합니다. 강원도팀, 강화도팀 등등 전국을 돌아다니는 작업조들이 많아요. 수집상이 작업을 포기해서 작업조에 돈이 안 들어가면 작업조가 현지에 눌러앉아서 기다려주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막상 필요할 때 작업조를 구하려고 해도 못 구해요. 작업조 돌리려고 손해 보면서도 출하하는 것이죠. 요즘은 작업비가 한 트럭에 27만원 정도 할 겁니다.”
“배추 가격이 안정될 기미는 안 보입니까?”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지방 내려가면 배추가 밭에 그대로 있습니다. 정부가 수매한다고 해봐야 시장 가격을 바꿀 만큼은 아니에요. 한파가 와서 배추가 꽁꽁 얼어붙고 까져서 못 쓰게 되면 그 때 가격이 다시 오를 수는 있지요.”
생산자, 전문유통인들이 쪽박을 차게 되었으니 가락시장의 중도매인들은 돈을 좀 만졌을까. 아니다. 가격이 내렸다고 소비자들이 더 많이 사지는 않는다. 12월 12일 오전 6시 가락시장. 한 40대 주부가 승용차 트렁크에 배추를 싣고 있다.
“한 포기 1000원인데 싼 건 아니에요. 동네 수퍼에서는 한 포기 500원이면 사요. 여기 배추가 품질이 더 좋아서 여기로 오는 거죠. 가격 쌀 때 김장 많이 담가서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면 1년 간 네 식구가 걱정없이 먹죠.”
20년 넘게 야채 장사를 해 온 한 60대 여성이 말한다.
“가격이 싸니까 더 싼 데가 생겨요. 직접 산지로 내려가서 헐값에 받아오는 거죠. 너무 싸면 안 돼. 적당히 싸야 손님들이 가락시장으로 오지. 그 때는 여기가 제일 싼 줄 아니까. 손님들이 귀신이야 귀신.”
요즘은 판매 대금을 못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거래처가 아예 문을 닫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경기가 안 좋긴 안 좋은 모양이야. 잘 되던 식당이 문 닫고 거래 끊어요. 얼마나 살기 힘들면 사람들이 먹는 것을 줄이겠어. 에휴. 섭섭해도 어쩌겠어. 지들도 살길이 막막하니 문 닫고 다른 일 알아보는 거겠지. 중도매인들 중에서도 손해보고 나간 사람들 있어. 시장에 파는 사람밖에 없다니깐. 이건 시장이 아니야.”
생산지 농민, 밭떼기 수집상, 유통공사, 화물트럭 기사, 중도매인, 거래처 모두 연쇄적으로 “죽겠다” 소리를 하니 이들은 누구에게 분풀이를 할 수 있나. 가락시장 기사들과 하역노조, 상인들을 상대로 옷장사를 하는 리어카 상인이 “따뜻한 겨울 재킷 한번 보소, 오늘 개시라도 합시다” 라며 시장 구석구석을 기웃거린다. 옷장수도 “죽겠다” 말한다.
* 이 기사는 주간조선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