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고종의 황후 측천무후 일대기
여황 측천무후/샨사 지음/이상해 옮김/현대문학
올해의 소설 중 하나만 고르라면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평론가 이남호도 동감이지 않을까. 이 소설은 당나라 고종의 황후인 측천무후(則天武后·624~705)의 일대기다. 평민 출신으로 귀족이 된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비구니로 삶을 꾸리기도 했던 그녀는 민간 전설에 영감을 불어넣을 만큼 파란만장한 모험을 감행했다.
나이 서른이면 궁녀들이 쓸모 없는 군식구로 전락했지만, 그녀는 세 살 연하인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중국계 프랑스 작가인 샨사는 완결된 인간으로서의 측천무후를 통해 전혀 다른 세계를 열고, 절대 복종의 지평을 펼쳐 보인다. 어떤 절대적인 인간관계가 그리울 때 이 소설은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충성과 죽음과, 그 둘 사이에 피어나는 또 다른 절대의 사랑이 여기 있다. 삶과 죽음이 경계선 하나 사이로 복종과 거역에서 기원하는 간명한 세계에 머무를 때….
■명문 종가서 펼쳐지는 두 이야기
달의 제단/심윤경 지음/문이당
2004년 동인문학상 최종심에서 양자 택일 결선투표에 부쳐졌던 작품이다. 이제 공개한다면 당시 제1차 투표에서는 이 작품이 수상작보다 득표가 많았다. 이 소설은 명문 종가를 중심으로 두 개의 이야기가 얽힌다. 하나는 '서안 조씨 가문 양정공파 17대 종손'인 조상룡이 군대를 제대하고 겪는 이야기다. 지방 대학 국문과를 다니던 상룡은 군을 제대하던 날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사당에 들어가 출입고(出入告)를 한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조상룡의 십대 조모가 되는 여인이 조선조 후반 안동김씨 집안에서 서안조씨 집안으로 시집와서 당하는 이야기다. 신혼 초 행복했던 시간은 잠깐, 첫 아들과 남편이 죽는 흉사를 치른다. 처음에는 시댁 사람들이 새며느리의 바른 행실을 칭송했으나, 이제는 모든 참절한 흉변의 원인이 며느리에게 있다고 몰아친다.
심윤경의 두 번째 장편인 이 작품의 백미는 바로 그 옛날 주인공 며느리가 친정할머니와 주고받았던 의고체의 편지글이다. 소설가 박완서가 "가슴이 떨리는 감동을 받았다"던 소설이다.
■우리 시대 출중한 냉소적 이야기꾼
오빠가 돌아왔다/김영하 지음/창비
똑같은 상상력, 똑같은 표현법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귀라도 자를 것이다. '나는 언제나 세상을 기절초풍시키고 싶어하니까'(160쪽). '냉소적인 인간이 진지하기까지 하면 큰일난다. 갑자기 인생이 정색을 하고 달려들 것이다'(120쪽).
김영하는 에피소드에 그러한 냉소적 시각을 얹어서 마치 방금 오디션을 마친 신출내기처럼 두리번거리고 있다. 신출내기는 두리번거린다는 특징을, 두리번거리는 사람은 주변을 살피는 중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걸려들면 여지없이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삭혀서 소설에 버무려진다. 은희경과 닮았다. 김영하는 황석영이 적극적으로 인정하듯 우리 시대의 출중하면서 젊기까지 한 이야기꾼이다. 품격 높은 통속처럼, 위인 전집 안에 들어있는 만화처럼 그런 독서를 역으로 뒤집어 말하면 재미 있기까지 한 소설이다.
■랭던의 해박한 지식과 글맛 일품
다 빈치 코드/댄 브라운 지음/양선아 옮김/베텔스만 코리아
트렌드를 형성한 밀리언셀러다. 팩트와 픽션을 적절히 섞는 방식이 세계적으로 뜨는 소설들의 공통 코드라는 사실을 가장 전형적으로 확인해주고 있다. 미국에서만 천만부를 내다보고 있고 아마존 하루 서평이 수천개를 넘나들며 40여개 국에서 판권 계약이 됐다는 것은 댄 브라운이 그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누가 소설문학의 쇠락을 말하는가.
이 책은 여러 흥미로운 요소들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주인공 랭던이 펼치는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얘깃거리가 일품이다. 모두 알고 있는 아이작 뉴턴, 보티첼리, 빅토르 위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인물들이 실존 교파의 수장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인류의 엄청난 비밀을 전승하고 있다. 댄 브라운이 이것을 사실이라고 말할수록 독자들은 바투 다가앉는다. 한국 독자들도 숨돌릴 틈 없이 몰아치는 댄 브라운의 솜씨를 이미 맛봤다.
■비선진국의 산업·무역정책 제시
사다리 걷어차기/장하준 지음/형성백 옮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장하준 교수는 올해 '사다리 걷어차기' '개혁의 덫'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등 세 권의 우리말 저서를 잇달아 펴냈다. 그중에서도 '사다리 걷어차기'는 전지구화(Globalization) 이후 선진국이 비선진국에 강요하고 있는 자유무역과 자유방임 경제를 거시적인 근대경제발전사를 통해 반박하고 있어 경제 현안에 대한 그의 주장을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의 기수인 구미 선진국들이 관세와 수출 보호금 등 보호주의의 울타리 속에서 경제를 키웠고, 경쟁력이 갖추어진 후 자유무역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강조한다. 따라서 비선진국이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서 산업 진흥정책과 무역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도 보호관세와 정부 보조금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多문화주의-전통 현대화 강조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강정인 지음/아카넷
세계사에서 '근대'는 서구의 산물이다. 따라서 비(非)서구의 지식인들은 서구에 대해 콤플렉스를 지닐 수밖에 없다. 서구의 근대사가 표준적인 역사이고, 계몽주의·자유주의·합리주의 등 서구에서 만들어진 사상이 보편성을 지닌다. 심지어 자본주의의 극복을 주장하는 사회주의마저 서구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서양정치사상을 전공한 강정인 교수(서강대)는 지난 8년간 '서구중심주의'를 벗어나는 길을 모색해왔다. 이를 위해 유럽과 미국에서 서구중심주의가 발전한 과정, 그 대표적 사상가인 로크와 헌팅턴의 사상, 서구중심주의가 동양에 투사된 오리엔탈리즘을 차례로 분석하고 서구중심주의와 중화주의(中華主義)를 대비한다. 그리고 서구중심주의의 대안으로 '다(多)중심적 다문화주의'를 제시하고, 그 유력한 하나의 축으로 동아시아 전통의 현대화를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