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 탈북자를 돕던 김동식 목사 납치사건에 개입한 북한 국가보위부 소속 조선족 공작원이 최근 검찰에 구속되면서 당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납치 과정=김 목사는 2000년 1월 16일 중국 옌지(延吉) Y불고기 식당에서 7~9명의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치돼 북송됐다. 당초 김 목사 부인 정영화씨 등이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밝힌 공작원 4명보다도 훨씬 많은 공작원이 납북 과정에 개입한 것이다.

당시 김 목사는 95년부터 탈북자를 상대로 선교활동 및 지원활동을 펴 왔다는 이유로 북한의 ‘요주의’ 인물이었고, 북한 국가보위부 등의 추적을 받고 있었다. 김 목사 주변 인사들은 김 목사가 99년 10월 탈북자 13명을 몽골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시켰던 일이 북한에 결정적으로 밉보인 사건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중국에서 탈북자 지원활동을 하다 2000년 북한의 공작으로 납북된 김동식 목사(사진 오른쪽)가 지난 96년 열린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북한의 유도 영웅 계순희 선수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납치당하던 날에도 김 목사는 옌지교회에서 여느 때처럼 예배를 마친 뒤 근처 식당에서 탈북자라고 밝힌 북한 공작원 동정남씨와 점심을 하기로 약속이 잡혀 있었다고 한다. 북한 국가보위부 공작원이었다가 작년 1월 귀순한 이춘길씨도 이 같은 수사결과를 뒷받침했다. 이씨는 작년 1월 월간지 ‘신동아’에 실은 육필 수기를 통해 “김 목사를 납치하는 데 모두 9명이 투입됐으며, 사용된 차량은 회색의 중국제 산타나 승용차로 ‘吉 H 423-23’이라는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고 아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김 목사는 지팡이에 의지해 걸음을 옮기는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납치과정에서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는 것이다.

◆범인 검거 과정=유씨는 2001년 8월쯤 납치사건에 개입한 또 다른 조선족 이모씨와 함께 국내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유씨는 성남, 안산 등 수도권 공사장에서 막노동일을 해 오다 지난 7월 중국에서부터 그의 얼굴을 알고 있던 한 탈북자의 제보로 공안 당국에 처음 포착됐다. 그가 최근 국정원 수사관들에 의해 붙잡힌 장소는 D건설사가 맡고 있던 성남지역 건설현장이었다.

유씨는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자신이 김 목사 납치사건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북한 당국이 아니라 중간의 다른 공작원에게서 간접적으로 지령을 받았고, 자동차를 마련하거나 납치를 위한 회의를 열 때도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고 다른 공범들에게 책임을 떠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공범에 대한 신병 확보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건 전모를 완벽히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북송된 김 목사의 생존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여러 가지 소문만 무성하고, 현재로선 생존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