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 디스커버리 커뮤니케이션스, 릴리, IBM, 존슨 앤드 존슨, JP모건체이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프루덴셜, SC존슨, 와코비아.'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미국에서 '일하는 엄마'들이 근무하기 좋은 직장 10위 안에 드는 기업들이다. 미국의 월간지 '워킹 머더(Working Mother)'는 매년 자녀를 둔 여성들이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있게 일하기에 가장 좋은 100대 기업을 선정해 발표한다. 이 명단에 오르는 기업들은 일하는 엄마들이 자녀양육을 위해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게 해주고, 긴 유급 출산휴가를 보장해주며, 직장 내에 시설 좋은 탁아소를 운영한다.

이들 기업이 일하는 엄마들에게 각종 혜택과 지원을 제공하는 이유는 여성의 사회적 평등이라는 대의를 달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회사에서 자녀를 돌봐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유능한 엄마 인력'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가족 친화적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게 해주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는 장래 여성인재들을 유혹하는 가장 큰 '미끼' 중 하나다.

대졸 이상의 고학력 여성 100명 중 93.5명이 일자리를 갖고 있는 미국사회에서는 요즘 단순히 여성채용을 늘리는 양적 변화의 단계를 넘어서 여성들의 요구에 조직문화를 맞추는 질적인 변화가 서서히 진행 중이다. 여학생이 반수를 차지하는 일부 법과대학원에서는 최근 지나치게 경쟁을 부추기는 수업방식은 여학생들에게 적합하지 않으므로 여성친화적인 수업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됐다. 출산과 육아의 경험이야말로 다양한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능력을 닦는 최고의 훈련이므로 '경력'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미국사회의 이 같은 변화는 고학력 여성들이 급증하면서 여성인재 확보가 기업이나 조직의 인력의 질을 좌우하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미국의 대학은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여학생 비율이 50%를 넘어 '여초현상'이 일어난 지 오래됐고 성적도 여학생들이 더 좋다. 40년 전만 해도 5% 미만이던 법과·의과대학원 여학생 비율은 이미 50%에 육박해 여초를 목전에 두고 있다.

전문직 인력을 키워내는 대학원 중 여학생 비율이 늘지 않는 유일한 분야는 경영대학원으로, 미국 경영대학원의 여학생 비율은 30% 수준을 맴돌고 있다. 여학생들이 경영대학원 진학을 기피하는 이유는 미국기업들이 여전히 '친(親)남성 문화'의 지배를 받고 있어서 노력하는 만큼 성과를 얻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남자들은 '지위(status)'에 목숨 걸지만 여자들은 '합의(consensus)'를 중시하는 스타일로 일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조직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데 전부를 거는 남성위주의 기업문화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니 기업들로서는 애가 탈 수밖에 없다.

실업률 증가로 고전하는 요즘 한국에서는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야 얼마든지 있으니 '여성들이 싫어하는 기업'이라는 딱지가 붙은들 무슨 대수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저출산과 고령화, 고학력 여성 증가현상을 감안할 때, 가까운 장래에 우리 기업들도 여성인재 끌어들이기에 공을 들여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 가서 여성들에게 외면당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여성들은 무엇을 원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비해야 한다.

(강인선 워싱턴 특파원 insu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