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망 생명공동체 회원들이 농촌체험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 26일 저녁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는 서울 종로의 도심 한가운데에서 이색적인 졸업식이 열렸다. 졸업생의 면면을 보고서는 도대체 정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양복에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 점퍼 위에 색을 메고 온 대학생, 흰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50대 중년, 아내와 함께 참석했다는 선생님 부부도 졸업생이다. 졸업식 축사를 읽는 사람은 나이가 지긋하신 스님이다.

이 졸업식은 지난 9월 10일부터 두 달 반 동안 진행됐던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의 불교귀농학교 15회 졸업식.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이정호 사무처장은 ‘아름다운’ 귀농에 대해 냉정하기 짝이 없는 말을 던졌다.

“여기 계신 사람들 주위 사람들한테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이런 소리 많이 들어요. 대부분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고 직장도 번듯한데 곡괭이질 하러 시골로 가겠다고 하니까 이런 소리를 들을 만도 하죠.”

‘직업 전환’ 아닌 ‘삶의 전환’

졸업생 곽우석(37)씨는 대구 경북대학교 공대를 졸업한 샐러리맨이다. 곽씨는 교사인 아내와 함께 맞벌이 하면서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 돈도 벌었고, 직장도 남부럽지 않다. 소비 규모도 큰 편이라 곽씨의 말처럼 ‘버는 만큼 펑펑’ 써봤다. 이런 곽씨가 왜 ‘가난한 귀농’을 꿈꾸게 됐을까.

“우리가 상생(相生)을 얘기하는데 도시에서는 불가능한 얘기예요. 제가 IT쪽 영업을 하고 있는데 이 바닥에선 내가 죽든지, 상대가 죽든지 둘 중 하나죠. 도시에선 제가 바라는 행복을 찾을 수 없어요. ‘돈이 최고’라지만 돈으로 해결 못하는 게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농촌으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곽씨는 3~4년 이내에 농촌으로 귀농할 계획이다. 그러나 곽씨는 농사를 짓기 위해 고향인 대구 달성군 현풍면으로 내려갈 생각은 없다. “고향으로 가면 분명히 ‘미친 놈’ 소리를 들을 것이고 이런 사람들 찾아다니면서 내 소신과 철학을 설명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1997년 IMF 경제 위기 이후 시작됐던 도시인들의 농촌으로의 탈출행렬이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올 가을로 15회째를 맞고 있는 불교귀농학교의 입학생은 1998~2000년 사이 매 학기 40~50명씩 등록하다가 20~30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중반부터 다시 40~50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귀농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은 비슷한 상황이지만, 귀농을 준비 중인 사람들의 특성은 예전과는 다르다. 이정호 사무처장은 “예전엔 귀농자들이 ‘직업의 전환’으로 귀농을 선택했지만, 최근의 귀농자들은 ‘삶의 전환’으로 귀농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경제위기 때문에 직장에서 명퇴한 50~60대 장년층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직장에서 한창 일하고 있거나 잘나가는 ‘자영업자’들이 많습니다. 또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들이 60% 이상입니다. 또 예전에는 남편들이 주도하면서 아내를 설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부부가 함께 귀농학교에 다니는 경우도 많습니다. 직업도 천차만별이라 선생님, 한의사, 목사님, 주부, 대학생, 직장인까지 정말 다양합니다.”

“월급 받아서 행복 살 수 있을까…”

젊은 고학력자들이 귀농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부가 함께 귀농학교에 등록한 서승국(39)·노지숙(39) 부부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있는 전형적인 도시인이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들이 경험하는 인간소외 문제가 귀농을 꿈꾸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아요. 일에 파묻혀 있을 때는 잊고 있다가도 직장에서 일이 끝나면 ‘내가 왜 일을 하고 있나’ ‘매달 받는 월급이 내가 생각하는 행복을 살 수 있을까’…, 이런 회의가 많이 들더군요. 그러던 중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생활을 생각해 봤습니다.”

귀농학교는 귀농을 부추기는 곳이 아니라 낭만적 귀농에 대한 환상을 깨는 곳이다. 서씨는 “농촌에서 오랫동안 농사를 지으신 분들도 빚에 허덕이는 경우가 많은데 서울 사람이 내려가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될지, 정말 수입이 줄었을 때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귀농학교에서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귀농교육을 하고 있는 곳은 불교귀농학교, 실상사 귀농학교 외에 전국귀농운동본부도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귀농학교에서는 구체적으로 농사를 짓는 법도 실습을 통해 배우지만, 선배 귀농자들을 통해 농촌의 냉정한 현실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다. 선배 귀농자들이 들려 주는 귀농의 현실은 도시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다지 낭만적이거나 목가적이지 않다.

3개월간 합숙하면서 귀농실습을 하는 ‘실상사 귀농학교’ 졸업생들은 50% 정도가 실제 귀농을 감행한다. 현재 귀농학교 졸업생들은 실상사 인근, 충북 괴산, 충남 홍성 지역에 많이 분포해 있다. 그러나 서울의 귀농학교에서 이론 교육을 받는 사람들 중 실제 귀농에 나서는 사람은 10~20% 내외이다. 불교귀농학교의 경우, 15회에 걸쳐 5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지만 60여명만이 귀농을 했다.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최수옥 간사는 “귀농을 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농촌에 뿌리를 박고 정착을 하기 전까지는 시골로 ‘이사’를 간 것일 뿐”이라면서 “한 달에 100만원도 안되는 수입으로 서너 식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육체노동이 얼마나 고된 것인가에 대한 현실을 깨닫고 귀농을 준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 귀농 결심한 30대 교사 부부

“정지용의 시 ‘향수’를 흙을 밟아 보지 못한 아이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에겐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서울에선 정말 불가능해요. ‘선행학습’이라고 학교에서 배울 것을 학원에서 먼저 배우고 오니 별별 교재를 다 동원해도 학교 수업이 재미 있을 리 없죠. 하지만 농촌에서는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 너무 많아요.”

내년 2월 전라북도 남원으로 귀농 예정인 정환길(39)씨와 당은자(36)씨는 부부교사다. 정씨는 서대문구 홍은중학교에서, 아내는 은평구 상진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시골 학교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교사들이 발버둥치는 가운데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정씨 부부가 귀농을 결심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이들의 교육이다. 자녀 교육을 위해 기러기 아빠·엄마를 자처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씨 부부는 한국의 농촌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정씨는 “교사 입장에서 생각을 해 봐도 서울에서는 도저히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을 것 같다”면서 “하루종일 학원을 다녀야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도시의 교육상황이 아이들에게 너무나 비정상적이다”고 말했다.

저녁시간 아이들은 학원에서 살아야 했고, 가끔 주말마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으로는 진정한 가족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정씨의 판단이었다. 정씨 부부는 현재 전북으로 전근 신청을 해 놓은 상황이다. 정씨 부부는 2~3년 뒤에는 실제 농사를 짓는 ‘농사꾼 선생님’으로 변신할 생각이다.

정씨 부부는 귀농을 위해 주말농장을 다니며 재배하기 쉬운 감자, 상추 같은 작물로 실습을 했다. 또 집 근처에서 텃밭도 일구고, 귀농학교에서 이론수업과 실습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2~3년 뒤에는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을 정도로 농사를 지을 계획입니다. 아이들과 우리 부부가 흙에서 뒹굴면서 땀 흘리며 제대로 촌놈이 돼 볼 생각입니다.”

* 이 기사는 주간조선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