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에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거금을 들여 서커스를 보고 왔습니다. 울긋불긋한 깃발이 조악하게 버티고 있는 이동식 천막 공연장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짝사랑의 첫 경험을 안겨주었던 소녀 곡예사를 다시 만나고도 싶었습니다.

다른 공연물과는 달리 이곳의 서커스도 사양길에 접어든 느낌이었습니다. 10여대가 넘는 자동차로 연결된 스낵바와 화장실이었지만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매표소 할아버지의 어눌한 손놀림이 영세함을 더했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공연장 입구는 '돈값을 못하겠구나'라고 느끼게 했습니다.

하지만 실내는 달랐습니다. 2층으로 나뉘어진 무대 상판에는 12인조 밴드가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객석 의자는 궁전처럼 화려했습니다. 현란한 무대장치와 컬러풀한 의상, 선명한 댄스, 해설자를 등장시킨 서커스는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동물이라고는 코끼리 한 마리에 말 네 마리가 고작이었지만 공연에 지급한 돈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줄타기 소녀의 등장은 어느 나라나 공통프로그램이 아닐까 싶습니다. 까마득한 천장에서 외줄을 타는…. '줄을 타면 행복했지~'라는 대중가요의 가사와는 달리 창백해 보였습니다. 아래에는 안전 그물망도 없었고 바닥에는 뱀 비슷한 동물들이 풀어져 있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소녀 곡예사가 무사히 줄타기를 마쳤을 때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소녀를 가련하게 여기는 '측은지심'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 것이겠지요.

(한상덕·대경대 공연예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