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일본 규슈 다자이후 유적을 찾은 ‘선생님을 해외로…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 참가자들이 신영훈 한옥문화원장으로부터 백제문화의 영향을 받은 건물터의 사적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소설가 최인호(崔仁浩)씨가 ‘잃어버린 왕국’이라고 표현했던 1400년 전 백제(百濟)는 지금도 일본땅에 살아 있었다. 백제의 유물을 복제한 듯한 일본의 유물이나 유적에서도, ‘백제’라는 이름을 딴 기차역(오사카시 백제역)에서도, 백제 유적지에 살고 있는 현대 일본인들의 마음에서도 백제의 생존을 느낄 수 있었다.

조선일보와 신한은행이 지난 1988년부터 매년 마련해 지금까지 1만여명의 초·중·고 교사와 일반 역사 애호가들에게 해외역사탐방 기회를 제공했던 ‘선생님을 해외로…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주관여행사 미토스)이 올해는 지난 6일 시작돼 10일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전국의 초·중·고교 교사 400명과 초등학교 4년~중학교 3년생 20명을 포함한 일반인 100명 등 모두 500명이 참가한 이번 유적 답사는 오는 12일까지 6박7일의 일정으로 일본 규슈(九州)의 각 유적지와 일본의 고도(古都)인 아스카(飛鳥), 나라(奈良), 교토(京都) 등을 돌아보며 고대 한국이 일본 열도에 미친 영향을 현장에서 직접 살피는 여정이다.

강사로는 석굴암과 남대문 등의 중수(重修·대대적인 수리·복원 작업) 공사에 참여했던 신영훈(申榮勳) 한옥문화원장, 국립민속박물관장을 지낸 민속학자 김광언(金光彦) 인하대 명예교수, 전 한국고고학회장 김병모(金秉模) 한양대교수, 홍윤기(洪潤基) 한국외대 교수, 시인 정호승(鄭浩承)씨, 조양욱(曺良旭) 일본문화연구소장, 이도학(李道學)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 건축사가 김도경(金度慶)씨 등이 참여했다.

답사단이 처음 찾은 곳은 규슈 다자이후(大宰府)시에 위치한 다자이후 유적.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서기 660년)한 직후,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대(大)병력을 파견했던 왜(倭)가 금강전투에서 대패한 뒤, 신라의 침공을 두려워하며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규슈지역에 방어기지를 설치한 곳이다. 이곳에는 사령부격인 다자이후 건물터와 다자이후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높이 10m, 폭 80m, 총길이 1.2㎞에 이르는 미즈키(水城)와 산성(山城)인 오노조(大野城)와 기이조(基肄城) 등이 남아 있다. 일본 역사학계는 이 성들의 축조를 지휘한 사람은 3명의 백제 고위귀족 출신들로, 병법에도 달통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장 강사로 나선 신영훈 원장은 교사들에게 다자이후와 미즈키 등의 축조를 기록한 ‘일본서기’(日本書紀·서기 720년에 지은 일본의 역사서)를 언급하는 대신, 다자이후 건물터의 초석(礎石)을 보라고 했다.

“저기, 초석 표면에 동그란 홈이 보이시죠? 경주 감은사 동탑 기단석에도 저런 홈이 있습니다. 알터라고 합니다. 큰 건물의 초석이나 바위 같은 것을 단단하고 뾰족한 돌로 갈면서 복을 빌다 보면 저런 홈이 생깁니다. 한반도의 민속신앙이 여기까지도 건너왔음을 알 수 있지요.”

탐방단은 공주 무령왕릉이나 전남 나주 복암리, 전북 익산 입점리 등에서 출토된 금동관·금동신발을 복제한 듯한 유물이 나온 서기 5세기 후반 유적인 규슈 다마나(玉名)시 후나야마(船山)고분과 일본에서 국보 중의 국보로 불리는 나라 호류사(法隆寺)의 ‘백제관음상(百濟觀音像)’ 등을 둘러보며 백제가 일본에 미친 영향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영향력은 그러나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었다. 정병수(丁炳洙·광주광역시 정광중학교·36) 교사는 “후나야마고분 주변에서 무밭을 갈던 마을 아주머니에게 ‘전주에서 왔다’고 이야기하자 ‘고향 사람(백제인의 후예)이 왔다’며 큰 무 하나를 통째로 밭에서 뽑아 주었다”며 “백제의 숨결이 이토록 강하게 남아있을 줄은 몰랐다”고 즐거워했다.

탐방단은 고구려의 담징스님이 벽화를 그렸던 호류사에 이어 10일에는 한반도로부터 불교를 수용해 발전시켰던 서기 6~7세기 아스카 유적과 다카마쓰 고분(高松塚) 등을 답사하기도 했다. 이들은 11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처음 축조했던 오사카성 등을 살핀 뒤 12일 귀국한다. 윤기봉(尹起奉·47·서울 동작고) 교사는 “불교의 전파 등 백제가 일본에 미쳤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귀중한 역사답사였다”고 평했다.

(아스카(飛鳥)=신형준기자 hjshi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