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오후 3시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숨이 막 넘어갈 듯한 72세 할아버지 환자가 앰뷸런스로 실려왔다. 전에 환자가 입원 중이었던 충북 A병원은 '호흡부전이 임박하니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함'이라고만 쓰인 진료의뢰서 한 장만 달랑 보냈다. 사전 연락도 없었다. 보호자는 "서울의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했다. 의료진은 즉시 동맥혈액의 산소 농도를 검사했다. 수치는 37, 정상치의 반도 안 되는 심한 호흡부전이었다. 문제는 내과계 중환자실에 빈 병상이 없다는 것.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떠나야 했다. 의료진은 인공호흡 장비가 있는 병원을 급히 수소문했다.

오후 5시쯤에는 전남의 한 종합병원에서 65세 뇌졸중 환자가 6시간 걸려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로 왔다. 역시 중환자실 입원이 불가능했다. 보호자는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며 의료진과 승강이를 벌이다 결국 서울의 2차 병원(준종합병원)으로 옮겨갔다. 지방의 번듯한 종합병원에서 치료받다가 그보다 설비가 못한 서울의 중소병원에 입원한 셈. 환자 가족들은 객지에서 생고생을 해야 한다.

서울 대형병원 응급실에는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수시로 사전 연락 없이 몰려든다. 응급환자 이송(移送)은 응급실 진료 여건이나 병상 상황을 감안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환자와 보호자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은 내원 환자의 20%인 40여명이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다.

이 같은 상황은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 등 이른바 '빅4' 병원 응급실이 모두 마찬가지다. 이미 포화상태인 응급실에 환자들이 계속 몰려들어 '시장판'이 되기 십상이다. 반면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은 병상이 남아도는 실정이다.

지난달 15일 밤 9시쯤 서울대병원 응급실. 중환자 병상 20개가 모두 차고, 응급실 병상 30여개도 환자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이후에도 틈틈이 앰뷸런스는 사이렌 소리를 내며 환자들을 내려놓았다. 특히 병실 여유가 없는 월요일이라 입원 대기 환자는 계속 쌓여갔다. 예진실에도 복통·고열 환자 16명이 북적였다.

지난 15일 저녁 서울대병원 응급실(사진 왼쪽)은 수용 인원을 넘는 환자들로 북적거렸지만 비슷한 시각 인근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은 10여개의 병상이 텅 비어 있다.

같은 시각 서울지역 종합병원 응급실 병상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1339 응급의료정보센터’에 문의를 했다. 놀랍게도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는 병상 38개가 비어 있었다. 사실 확인을 위해 대학병원을 직접 방문한 결과, 이곳은 말끔한 하얀 시트로 덮인 빈 침상이 수두룩했다. 이 병원도 하루 100명 정도의 응급환자를 처리하는 곳이지만, 마침 이 시각에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15일 오후 서울대병원 응급센터 지하1층에 있는 1339 응급의료정보센터 상황판에는 ‘빅4병원’의 응급실은 빈 병상이 ‘0개’로 나타난 반면, C대학병원은 28개, E대 26개, H대 18개, B대 18개 등으로 응급실에 여유가 있었다.

이처럼 대형병원에만 환자가 몰리는 까닭은 환자들이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탓도 있지만, 119 구급대가 환자 이송처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지 않은 데다 응급실 병상 정보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가 가자고 하는 병원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서울대병원에 환자를 내려놓은 한 구급대원은 “환자가 원하는 곳이 아닌 다른 병원으로 가면 민원이 들어오고, 그 병원에서 뒷돈을 받는 것으로 오해한다”고 말했다.

엄밀히 따져 병원 간 응급환자 이송시 해당 병원에 사전 연락을 취하지 않고 환자를 옮기는 것은 불법이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4조에 따르면, 이송받을 의료기관에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곽영호 교수는 “대형병원 응급실을 아무리 늘려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최소한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경우만이라도 미리 연락 좀 하고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1> 응급실인가 입원실인가]

[▶ <2> 너도 나도 대형 병원만]

[▶ <3> 의사없는 소규모 응급실]

[▶ <4> 응급실 만화경]

[▶ <5.끝> 과부하 '119 앰뷸런스']

[▶ [전문가좌담] 응급의료체계 현실화하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