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5일 폴란드에서 "북한 붕괴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대통령의 판단'을 전제로 한 언급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단순히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은 외교적 언사일 수 있으나 이번은 좀 다른 것 같다. 북한 붕괴 가능성이 외신 보도 등을 통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노 대통령의 말은 정보를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북한에 대한 유화 제스쳐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북한팀장은 "앞으로 북한 문제를 자신이 관리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미국 대선(11월2일) 후 북핵을 비롯한 북한 문제의 적극적·주도적 해결 의지를 밝혀왔다. 이날 폴란드에서의 발언도 '북한 붕괴를 바라지 않는' 바탕하에 남북대화를 이끌고, 부시 행정부와 대북문제를 논의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한 것이다. 노 대통령이 이미 지난 6월 북한이 개혁과 개방에 나설 경우, 포괄적인 대규모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맥락이 비슷하다. 대북 특사 파견, 남북정상회담 등 예상되는 남북 간 굵직한 현안을 현 '김정일 정권'과 직접 해결하겠다는 뜻을 다시 한번 밝힌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올해 들어 부쩍 미국이 북한의 붕괴를 노리고 있다고 반발해 왔다. 이는 북한이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선제타격론' 등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우리는 미국과 같이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낸 것으로 보인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도 "북한의 붕괴와 관련, 여러 가지 시나리오들이 나오는 데 대해서 노 대통령의 입장을 밝힌 것"이라며 "노 대통령이 최근 북한의 경제사정이 호전됐다는 정보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내 강경파 견제

부시 행정부 내에서 대북 강경책을 주장하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을 견제하는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미국 대선 직후부터 북한 붕괴 시나리오가 미국 내 일부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본격 거론되고 있다.

특히 부시 행정부의 대북 온건파였던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물러나기로 함에 따라, 북한 인권법을 필두로 북한 붕괴정책이 가속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폴란드를 국빈방문중인 노무현대통령은 3일 오후 대통령궁에서 열린 양국 협정조인식에 앞서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폴란드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안보전문가는 "노무현 정부 내에는 2기 부시 행정부 4년 동안 북한 붕괴 정책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가진 인사들이 많이 있다"며 "최근 안정적인 북한 문제 관리를 위해서 북한붕괴 문제가 이슈화되지 말아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이런 정부 내 움직임의 연장선상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핵문제의 조급한 해결을 위해 북한 붕괴 정책을 구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3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도 "북한 인권 문제는 압박이나 체제교체와 같은 방법으로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기보다는 개혁과 개방을 유도, 북한 사람들의 생활수준과 정치적 권익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한 것은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