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치과를 하면서 생활에 밀접한 정치를 하겠다"고 말하는 김영환씨

경기도 안산시에 보기 드문 치과의원이 문을 열었다. e믿음치과다. 고잔동 716번지 메디피아빌딩 5층에 올라가면 화사하고 단아한 화랑이 방문객을 맞는다. 마치 경복궁 옆 소격동의 고급갤러리에 온 것 같다.

2선의원, 과학기술부 장관, 민주당 정책위의장ㆍ대변인을 지낸 김영환(金榮煥·50) 시인이 문을 연 갤러리 겸 치과병원 ‘갤러리믿음’(www.dentaltrust.co.kr)이다. ‘갤러리믿음’은 개관기념으로 순수예술단체인 컬러브레인(Colorbrain) 초대전을 열고 있다. 김선정, 김은경, 신금주, 김현우씨 등 의 작품 30여점이 11월 26일부터 12월 26일까지 전시된다.

총선 후 처음 만나는 김영환씨는 놀랍게 변해 있었다. 뒷머리를 길러 빗어넘긴 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연상케 했다. “국회의원 때보다 훨씬 분위기가 있다”고 말하니, 그는 “지지자들은 자꾸 머리를 (예전처럼) 짧게 자르라고 한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아내 질책에 개업 결심”

“의료서비스 산업으로 국가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병원을 차렸다. 지금 싱가포르로 세계의 부유층들이 수술을 받으러 간다. 한국 의료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머리 좋고 손재주가 좋은 사람들이다. 치과 치료와 성형 수술은 한국 의료인들이 세계 최고다. ‘치아를 심고 교정을 하려면 한국에 가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면 세계에서 환자들이 한국으로 몰려온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의료서비스 산업의 컨셉트를 가지고 그 ‘모델하우스’로 만든 게 e믿음치과다. 이것이 성공하면 이런 컨셉트 그대로 개방된 의료시장이 중국으로 진출할 것이다.”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그는 상심(傷心)을 달래려 대학산악반 선배(박인식)와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과학기술부 장관 시절 그는 박인식씨와 함께 도봉산 인수봉을 록 클라이밍으로 등반했을 정도로 산악인들과 교유가 깊었다. 파리에서 두 달 동안 머무르면서 산악인들과 함께 알프스만 두 번을 다녀왔고 베네치아(북부 이탈리아), 독일, 영국 등을 여행했다.

그는 주로 예진을 전담하게 된다.(왼쪽) 예진실 '고흐' 앞에 선 김영환씨.(오른쪽)

2개월 동안 힘들게 사는 많은 화가들을 만났고 산사람들과도 어울렸다. 그는 파리에서 ‘게으른 산책자’가 되어 자유를 만끽했다. 하염없이 하루종일 센강가를 거닐기도 했으며 밤마다 5~6유로짜리 와인을 놓고 문학과 예술을 논했다. 지하방에서 그는 틈틈이 시와 산문을 썼다. 배는 고팠지만 파리의 자유에 포만감을 느꼈다.

그는 프랑스 오베르(auver)에 가서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기도 했다. 고흐를 만난 느낌을 지인들에게 이메일로 보냈었다.

“작은 고통과 불행을 가진 사람들은 큰 고통과 불행을 가진 사람을 보고 위안 받는다. 나도 고흐의 생애와 만나면서 위로 받았다. 가난하고 못생긴 고흐를 사랑한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고흐의 외로움이 낙선의 고통과 함께 전달됐다.”

그는 정치 입문 전인 1988년, 노동자 생활을 거쳐 15년 만에 치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 강남에서 치과병원을 열었던 적이 있었다. 그는 그때 문익환(文益煥), 계훈제(桂勳梯) 등 많은 재야인사와 장기수 노인들의 치아를 봐주었다.

낙선의 충격이 컸던 탓에 그는 1년쯤 쉰 뒤에 치과병원을 다시 열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의 계획을 앞당겨 놓은 것은 아내였다.

“집사람이 파리로 와서는 ‘그렇게 빈둥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애들을 굶게 할 것이냐. 국회의원 떨어진 것 가지고 뭘 그렇게 우거지상을 하고 다니냐. 빨리 수염 깎고 치과를 개업해서 생계를 맡으라’고 채근했다. 내가 국회의원에 떨어져 어려워지니까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겉멋에 들어 정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현실을 관념적으로 본 것도 있다.”

주변사람들은 그가 다시 치과를 하는 것을 만류했다고 한다. 그의 지지자들은 “겨우 치과의사의 이미지를 씻고 정치인으로 자리잡았는데, 큰 정치를 해야 할 시기에 치과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파리에서 2개월을 보낸 후 그는 세상 공부를 하고 싶어 비즈니스 현장을 따라다녔다. 벤처회사 ‘다림비전’을 운영하는 동생과 함께 미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태국 등을 다니며 마케팅 현장을 지켜봤다.

“세계 유명대학에 적(籍)을 두고 어영부영 공부하는 대신 직접 현장을 경험하자고 생각했다. 동생이 비행기표만 사주면 나는 어디든지 따라가 동생이 어떻게 기술을 파는지 그 마케팅 현장을 지켜봤다. 돈 1억원을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했다. 지금 정치권이 성장이냐 분배냐 하고 나발을 불 때가 아니다. 우리 정치가 얼마나 (경제) 전선에서 떨어져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국회의원 두 번에 장관도 해봤지만 내가 얼마나 부족했었는지를 절감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치과병원으로 나라의 운명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0년 만에 치료 기구를 잡으면 손이 떨리지 않느냐?”고 기자가 묻자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전혀 문제 없다. 체력이 문제가 아니다. 이 일에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느냐가 문제다. 치과의사로 생계만을 꾸린다고 하면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병원이 정상 궤도에 들어가면 수익의 일정 부분을 젊은 작가들의 그림을 구입하고 돕는 데 쓸 생각이다.”

“치과의원으로 나라의 운명을 바꾸고 싶다”

‘e믿음치과’를 여는 데 3억여원을 들였다고 한다. 3억여원은 전부 빌린 돈이다. 환자에게 돌아가는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테리어 비용을 평당 70만원으로 최소화했다. 과잉설비가 과잉진료를 낳고 과도한 의료비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e믿음치과’의 방들은 화가 이름이 붙어 있다. 고흐, 샤갈, 모네, 미로…. ‘e믿음치과’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필름과 차트가 없는 디지털화를 했다. 조금 있으면 집에서도 인터넷 접속만으로 부모님의 치료과정을 영화보듯 전부 볼 수 있게 된다.

고흐(Gogh)방은 예진(豫診)실이다. 그는 임플란트(implant)를 포함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지만 당분간은 병원에 상근하면서 예진, 구강교육, 상담, 관리, 경영에 전념할 계획이다. 환자들은 고흐방에서 유명 정치인으로부터 예진을 받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그를 도와 ‘e믿음치과’에서 일하게 되는 치과의사는 모두 6명. 상근하는 3명은 분야별 전문의사이고, 3명은 예약에 따라 환자를 치료하게 된다.

“이번에 미국 보스턴에 가서 최신 임플란트 기술을 배워왔다. 내가 안해주면 안되는 사람에게는 기회를 봐서 임플란트도 해주고 싶다. 치과가 잘된다는 보장은 없다. (경제 불황으로) 지금 고잔 신도시 역시 거덜이 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론 병원을 경영하면서 기회가 있으면 다시 정치를 하고 싶다. 생활정치를 하고 싶다. 정치에 올인(all-in)을 하진 않겠다.”

그는 민주당 시절 이웃한 지역구의 천정배(千正培) 의원과 함께 주목받는 젊은 정치인이었다.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으로 간 천정배 의원은 3선에 성공해 원내대표가 되어 있지만 민주당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그는 낙선했다. 그를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왜 편하게 열린우리당을 따라가지 않았냐?”는 질문을 하곤 한다.

“어찌 회한이 없겠나. 솔직히 가끔 내가 과연 가치있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가 하는 자문을 할 때가 있다. 대통령을 당선시킨 민주당을 깬 노무현 대통령에게 더 잘못이 있는 것 아닌가. 탄핵은 민주당을 깨지 않았으면 이뤄질 수도 없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불황은 명백히 인재(人災)다. 세계 경제는 지금 다 호황(好況)이다. 정치는 화합하고 통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대통령이 이걸 못하니 국민들의 에너지를 모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 이 기사는 주간조선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

(조성관 주간조선 차장대우 maple@chosun.com)